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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복숭아

드디어 극한 폭염도 한발 뒤로 물러섰다. 오랜 폭염과 장마도 지나가고 저녁이면 ‘모기 입도 삐뚤어’ 질 만큼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23일은 처서다. 조선시대에는 그간 눅눅해졌던 실록 등을 거풍하고 햇볕에 말리는 포쇄 행사를 했다. 햇볕은 따뜻하지만, 바람이 선선해지니, 눅눅한 서적뿐 아니라 처졌던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도 좋은 때이다.

처서에는 복숭아가 제철이다. 일교차가 커지는 이맘때쯤이면 복숭아의 당도가 높아져 늦여름 과일 중 으뜸으로 친다. 복숭아는 비타민, 미네랄 등 다양한 성분이 포함돼 더운 날씨에 지친 사람들에게 원기 회복은 물론 노화 방지 효과까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서왕모의 전설에 따라 장수를 상징하는 과일로 조선시대엔 진찬에도 올렸던 과일이다.

때는 바야흐로 처서를 조금 앞둔 정조 19년(1795) 음력 6월 말. 궁궐의 도서관 격인 창덕궁 후원 주합루와 규장각에서 신하들이 책을 읽다가 잠시 잠이 들었다. 무더운 한여름 오후였으니 얼마나 눈꺼풀이 무거웠겠는가. 마침 그때 어명을 전하는 내시가 온다는 급한 전갈이 왔다. 졸던 신하들이 깜짝 놀라 허겁지겁 내시를 맞았다. 내시는 잔뜩 겁에 질렸던 신하들 앞에 소반을 들이밀었다. 소반의 붉은 보자기 안에는 복숭아가 담겨 있었다. 내시는 아울러 “후원의 작은 복숭아가 마침 익었다. 신선(神仙)의 복숭아는 사람을 장수하게 한다고 들었다. 지금 이렇게 하사하는 데는 각별히 기대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소반은 남겨 두어 규장각의 고기(古器)로 삼도록 하라”라는 임금의 말씀을 전했다(<홍제전서>, 일득록, 훈어).

무더위에 책과 씨름하고 있을 신하를 생각하면서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서 자란 복숭아를 하사하며 격려했다. 낮잠을 즐기다 임금의 전갈을 들은 신하들은 얼마나 황망했을까. 가슴이 철렁했던 신하들은 자신들을 생각해 주는 정조의 마음에 그만 감읍하였다. 복숭아 앞에 절을 올리고 맛보며 어떤 신하는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다 한다. 정조가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를 신하들에게도 하사했으니, 감개무량했으리라. 천은망극이 아닐 수 없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흔히 물과 물고기에 비유하여 어수지친(魚水之親), 수어지교(水魚之交) 등으로 표현한다. 주합루로 오르는 정문 이름이 어수문(魚水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달고 맛있는 복숭아 한쪽을 베어 물며, 200여년 전 정조의 격려에 눈물 흘리던 규장각의 신하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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