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창의적 연구풍토 훼손할 연구·개발 예산 삭감 안 된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국가 주요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이 전년보다 13.9%나 줄어든다. 2016년 이후 국가 주요 R&D 예산 감소는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나눠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예산안 대폭 삭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국가 R&D 예산은 2016년 한 자릿수 비율로 감축된 것을 제외하곤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난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내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보면 내년 주요 R&D 예산은 21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조4000억원이 줄었다. 기초 연구 예산은 올해 대비 6.2%,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은 10.8%가 감소한다.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R&D 예산안이 대통령의 ‘카르텔’ 한마디에 졸속으로 삭감되는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가 R&D 예산안은 6월까지 확정돼야 하는데 6월 말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심의가 중단됐고, 감사원이 운영실태 감사에 착수하자 충분한 검토 없이 삭감안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부가 지난 3월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에서 ‘5년간 170조원의 R&D 예산을 투자해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 것과 비교하면 당혹스러울 정도의 ‘급변침’이다.

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데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R&D에 대한 정부의 투자확대가 큰 역할을 했다는 데 이론이 없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학문 생태계의 확장과 다변화, 창업 활성화와 민간 기술이전 등을 통한 국부창출, 해외 로열티 판매 등 성과를 냈다. 한국이 고부가가치형 산업구조로 체질전환하는 데에도 R&D 투자가 동력이 됐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이 R&D 예산 삭감을 금기시해온 것은 투자 성과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도외시한 윤 대통령의 ‘카르텔’ 발언과 예산삭감은 과학자들의 자긍심과 사기를 꺾는 일이다. 일부 비효율은 시정돼야 하지만, 예산 일괄삭감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 장기적인 연구 프로젝트의 중단, 인재유출, 기술혁신 지연 등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다. 당장 업적이 나오는 연구만 하고 창의적인 연구는 꺼리게 될 것이다. 이런 풍토가 지배하면 한국은 ‘도로 중진국’이 될 우려도 있다. 정부는 R&D 예산 삭감 방침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Today`s HOT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개막식 앞둔 모습 많은 눈이 쌓인 미국의 모습 심각한 예멘의 식량과 생필품 부족 상황 오염 물질로 붉게 물든 사란디 개울..
항공기 추락 잔해 인양 작업 높은 튀니지 실업률, 취업을 요구하는 청년들
11명 사망한 스웨덴 총격사건, 임시 추모소 현장 8년 전 화재 사고 났던 그렌펠 타워, 철거 입장 밝힌 정부
발렌타인데이를 앞둔 콜롬비아의 철저한 꽃 수출 인도 어부와 상인들의 삶의 현장 2월 흑인 역사의 달을 기념하는 저스틴 트뤼도 총리 비바람과 폭풍이 휘몰아치는 미국 상황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