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1년의 발자취 (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년은 ‘검찰과 얽힌 수난의 시간’이었다. 당대표 출마 때부터 불거졌던 사법 리스크 논란은 현실이 됐다. 검찰 수사에 끌려다니는 탓에 “첫째도, 둘째도, 마지막도 민생”이라던 이 대표의 취임 일성은 빛이 바랬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이라며 당 총력을 이 대표 엄호에 쏟았지만, ‘방탄’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재집권을 위한 토대 구축이라는 막중한 임무에 실패하면 이재명의 시대적 소명도 끝난다는 사즉생의 정신으로 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1년이 흐른 지금, 당 안팎에선 이 대표의 ‘사즉생’ 결단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불거지고 있다.
작년 9월 대표 당선되자마자
대장동 의혹 검찰 수사 본격화
이 대표, 벌써 5번째 출석 앞둬
■ 취임과 동시에 사법 리스크 시작
민주당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는 이 대표 취임과 함께 시작됐다. 검찰은 이 대표 당선 4일 만인 지난해 9월1일 이 대표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소환조사를 통보했다. 이 대표가 대선 후보일 때 대장동 개발 특혜 및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허위로 발언했다는 혐의였다.
이 대표는 검찰에 불출석하고 서면조사에 응했다. 검찰이 추석 연휴 직전에 소환 통보를 한 것은 망신주기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검찰은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인 그해 9월8일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후 검찰은 이 대표 측근과 민주당 의원들을 수사선상에 올리며 이 대표와 민주당을 압박했다. 지난해 10월 검찰은 이 대표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민주당사를 압수수색했다. 이어 대장동 개발 편의를 봐준 대가로 뒷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정진상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을 구속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국회 본청 정무조정실장실도 압수수색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던 이 대표도 최측근 2명이 구속되자 “검찰이 수사를 해야지 쇼를 해서 되겠느냐”(지난해 11월25일 최고위원회의)는 등 맞대응으로 태세를 바꿨다. 친이재명(친명)계 최고위원들은 ‘이재명과 정치공동체’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하는 등 이 대표 지키기에 나섰다.
올해 1~2월 이 대표가 성남FC 후원금 및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세 차례나 검찰에 출석하면서 민주당의 이 대표 지키기는 정점을 찍었다. 지난 1월10일 이 대표가 처음으로 검찰에 출석할 때 소속 의원과 당직자 50여명이 수원지검 성남지청 앞에 모였다. 2월4일에는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를 열고 검찰의 수사권 남용을 규탄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운동’ 이후 처음으로 당 전체가 나선 장외 집회였다.
체포동의안 부결시키는 등
당은 ‘제 식구 감싸기’ 자충수
친명·비명 갈등은 더 깊어져
■ ‘방탄’으로 꼬인 스텝
민주당이 이 대표를 엄호하면 할수록 민주당과 이 대표 모두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 소속 의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돼도 ‘제 식구 지키기’로 일관하는 자충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28일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한 데 이어 지난 6월12일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휘말린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체포동의안도 부결시켰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는 내용의 당헌 80조도 논란이 됐다. 당 지도부는 지난 2월23일 기동민·이수진(비례)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뒤 두 의원에게 당헌 80조를 적용할지 말지 결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3월22일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 특혜 및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기소된 뒤에야 세 명 모두 명백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헌 80조를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 지도부가 방탄에 나설수록 내홍은 커졌다. 친명계와 비이재명(비명)계 사이 갈등은 지난 2월27일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계기로 표면화했다. 민주당에서 30여명이 찬성·기권·무효로 이탈표를 던지며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까스로 부결됐다. 친명계는 비명계가 총선 공천을 걱정하며 당권 싸움에 나선 것이라고 격앙했다.
이 대표는 지난 6월19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방탄 프레임을 돌파하기 위한 수였지만 당내에서조차 뒤늦은 결심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조만간 또 한번의 체포동의안 표결 시험대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 측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이번에 출석하면 이 대표는 취임 후 5번째로 검찰에 불려가게 된다.
당 지도부는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했으니 국회를 열지 않는 비회기 기간에 영장을 청구하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이 ‘30일 조사’를 요구하는 만큼 정기국회가 열리고 나서야 구속영장이 청구될 가능성이 높다. 체포동의안 표결 절차는 불가피해 보인다.
당내에선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했으니 가결시켜야 한다는 쪽과 가결하면 검찰의 이 대표 구속 정당성만 부여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당사자인 이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9월 말 추석 연휴 밥상머리의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결하면 강성 지지층의 반발 등 분열을 피할 수 없고, 부결하면 방탄 프레임은 심화된다. 어느 쪽이든 민주당에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임기응변식 대응 비판도 확산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이행
장기 전략으로 당 이끌어야”
■ 아직도 남아 있는 수사들
문제는 이 대표와 그 주변을 겨냥한 검찰의 다른 수사가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428억원 뇌물 약정설’을 보강수사 중이다. 수원지검은 쌍방울그룹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수사 중이고,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정자동 호텔 개발 특혜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이 대표 배우자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도 수사 중이다. 검찰의 옥죄기가 계속될수록 이 대표 거취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돼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경우 이 대표 사퇴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
민주당이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키고 장기적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통화에서 “이 대표가 두 달 전에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할 때는 비회기 등 단서를 안 달았지 않나”라며 “본인 말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이 대표를 보면 장기적 전략이 없고 사안마다 그때그때 대응한다”며 “이거 찔끔하다가 저거 나오면 우르르 공만 보고 달려가니 야당이 세게 끌고 갈 수 있는 사안을 끌고 가지 못한다. 공간을 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