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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대통령발 이념전쟁

입력 2023.08.28 20:24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사회주의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자유가 갖는 특징’이라며 자유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를 자임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스승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잡아내는 데 혈안이다. 8월15일 윤 대통령이 ‘인권·진보 활동가들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며 주홍글씨를 새기자,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김좌진 장군의 흉상을 뽑으려고 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대통령발(發) 이념전쟁이 의아하기만 하다.

박정훈 배달노동자

박정훈 배달노동자

윤 대통령이 상상하는 공산전체주의는 ‘민주당’과 ‘전 정권’을 지칭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에서 공산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을 거치며 박멸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 뿌리를 상하이 임시정부와 또 다른 반공주의자 백범 김구로 삼는다. 그렇다면 조선노동당과 그 추종세력을 말하는 걸까? 조선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을 역사적 전통으로 삼는다.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공산주의의 이상과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공산당과 공산주의자들이 한반도에 등장한 건 독립운동과 함께였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정책과 3·1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 러시아 민중의 혁명과 피억압 민족에 대한 지원은 많은 모던 보이·모던 걸들을 공산주의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1925년 4월17일 서울 아서원에서 노동자·농민의 혁명과 조국해방을 꿈꾸며 조선공산당 창립대회가 열렸다. 김재봉·박헌영·김단야·조봉암·주세죽·고명자·이재유·이관술·이현상 등이 공산주의 운동과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돼 고문받아 죽거나 해방 후 남과 북에 버림받아 숙청당했다.

그러나 불세출의 혁명가 이름을 기억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공산주의 운동이 식민지 조선인들과 함께 벌인 투쟁들을 기억하는 일이다. 제2의 3·1운동을 꿈꾸며 계획된 1926년 6·10항쟁의 배후에는 고려공산청년회 권오설이 있었다. 거사 직전 권오설은 체포되었지만 민중들은 지도자 없이 항쟁을 벌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29년 광주학생운동과 원산 총파업은 물론 일제의 토지수탈과 병참기지화에 맞선 노동자·농민의 소작쟁의와 파업투쟁에는 늘 공산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역사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49명 우리 파업단의 임금감하를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공장 직공의 임금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서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1931년 을밀대에 올라간 강주룡이 ‘함께 살자’며 외친 말이다. 일제 경찰은 그를 적색 노동조합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구속했다. 윤 대통령이든 대통령이 비난하는 민주당이든 강주룡과 똑같은 주장을 하며 투쟁했던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구속한 것은 다르지 않았다.

유명 독립운동가의 흉상을 세우거나 철거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거대 양당으로부터 버림받은 국민들의 무너진 삶을 바로 세우는 일일 것이다. 이게 공산주의라면 공산주의자는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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