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을 강조하는 기업 광고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그린피스와 시민들이 조사한 결과 대기업과 산하 계열사 10곳 중 4곳은 ‘친환경’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친환경은 아닌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게시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린피스는 497명의 시민과 함께 지난해 4월 이후 1년간 대기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미지 형태의 게시물 6만21건을 전수 분석해 그린워싱 사례를 찾았다. 그린워싱은 기업이 친환경적인 일부 속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속성을 숨기는 등 소비자가 기업 활동의 환경적 이점을 오도하도록 하는 행위다. 조사 대상 기업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한 대기업과 그 산하 계열사 2886개 중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유·운영하는 399개다.
그린피스는 그린워싱의 주요 유형을 제품의 실제 성능이나 기업의 혁신과 관련이 없이 자연의 이미지를 활용해 기업이 친환경 이미지를 씌우려고 하는 ‘자연 이미지 남용’, 저탄소 기술 개발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녹색 혁신 과장’, 직접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소비자 참여형 이벤트를 열며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책임 전가’ 등 3가지로 정의했다. 그린피스 네덜란드사무소가 지난해 ‘알고리즘 투명성 연구소’와 미국 하버드 대 제프리 수프란 박사에게 의뢰해 받은 ‘그린워싱의 세 가지 그림자’ 연구를 근거로 했다.
전체 게시물 6만21개 중 그린워싱에 해당하는 게시물은 총 650개였다. 기업 399곳 중 그린워싱을 한 번이라도 올린 곳은 165곳으로 41.35%였다. 그린워싱 콘텐츠를 가장 많이 게시한 업종은 정유·화학·에너지 분야(650개 중 80개)였고, 건설·기계·자재(62개), 금융·보험(56개), 쇼핑·유통(56개) 등 순이었다. 다만 각 산업군의 기업 수 편차는 컸다.
그린워싱 사례 650개 중 절반이 넘는 51.8%가 ‘자연 이미지 남용’ 유형이었다. 예를 들어 기아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SUV 차량을 숲속에 둔 이미지를 올리고 ‘보기만 해도 숲 냄새가 난다’는 문구를 담아 친환경인 것처럼 포장했다.
‘책임 전가’ 유형은 39.8%였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7월 올린 게시물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나와 지구를 위해 자전거로 라이딩을 시작하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녹색 혁신 과장 유형은 18.3%였다. SK이노베이션은 SK루브리컨츠가 ‘탄소중립’ 윤활유라고 광고한 뒤 ‘그린워싱’으로 환경부 제재를 받은 제품을 ‘탄소 감축 노력’ 사례로 소개했다. 두 가지 이상의 유형이 섞여 있는 사례도 23.3% 였다. 기업 임직원의 플로깅(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 기업 활동과 상관없는 환경 트렌드 소개 등 기타 사례는 전체 그린워싱 사례의 14%다.
시민들이 뽑은 ‘최악의 그린워싱’ 1위는 롯데칠성음료의 ‘자연이미지 남용’이 꼽혔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4월 멸종위기종 황제펭귄, 해달 등을 플라스틱병 라벨에 삽입하며, “환경을 위한다“고 했다. 플라스틱 페트병이 바다에 버려져 멸종위기종이 피해를 받는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2위는 삼성스토어의 ‘녹색혁신 과장’ 사례다. 그린피스는 정부 친환경 마크가 아닌 자사 마크를 사용해 공인기관의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으로 오인하게 했다고 봤다. 그밖에 자연 이미지를 남용한 항공사 한진 등의 사례가 언급됐다.
그린피스는 “기업의 그린워싱이 교묘해질수록 소비자는 진짜 친환경 기업을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특정 기업의 그린워싱이 발각되면 친환경 시장 전반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하락할 수도 있다”라며 “기업은 손쉬운 그린워싱 마케팅 유혹에서 벗어나, 탄소중립 목표 시한을 앞당기고, 100% 재생에너지 사용과 같은 기후위기 해결에 필요한 기업의 환경 역량을 키우는 모습을 소비자에게 보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