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철 지난 이념·반국가 딱지로 나라 동강 내는 ‘반쪽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지향할 가치에서 중요한 게 이념”이라며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 실용은 없다”고 말했다. 야당에 대해선 “협치, 협치 하는데 우리는 앞으로 가려는데 뒤로 가겠다면 안 된다”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비판에는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1987년 직선제 도입 후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이념을 앞세운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왜 이념전쟁에 매몰돼 국민통합과 협치를 포기하고 나라를 두 동강 내려는가.

윤 대통령의 극단적·독선적 메시지는 집권 2년차에 더욱 세지고 있다. 연찬회에선 전임 정부를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사로잡힌 반국가세력으로 공격하고, 현 정부는 “국민을 위해 설정한” 자유민주주의세력으로 매김했다. 이분법적 잣대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로 촉발된 이념전쟁 중심에 국방부가 아닌 윤 대통령이 있는 셈이다. ‘독립운동 영웅’인 홍 장군에 대한 예우는 보수·진보를 떠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다. 이런 사안까지 철 지난 ‘자유 대 공산’ 구도를 소환하는 것은 국가정체성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일 뿐이다. 윤 대통령은 민주화 시대를 거슬러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권위주의 시절로 역사의 시계추를 되돌리려는 것인가.

윤 대통령은 야당과 비판 언론을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고 비난했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정부에 비판적인 다수의 국민들에게 적대적 인식을 표출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국민의 70% 넘게 오염수 방류를 우려하는데, 윤 대통령은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 이런 세력들과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본의 오염수 해양 투기에 면죄부만 주며 스스로 ‘정부 불신’을 키워놓고, 국민을 ‘1+1’도 모르는 바보로 만들고 겁박한 것이다. 정부를 따르지 않으면 싸우겠다니 대국민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국정을 ‘망하기 직전 기업’에 비유하며 “나라가 거덜나기 일보 직전”에 정권을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통합을 포기하고 스스로 ‘반쪽 대통령’을 자처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이 성공할 리 만무하다. 윤 대통령의 극단적 언사는 건강한 보수세력까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념을 앞세워 보수와 진보, 내 편과 네 편 가르기로 국론을 분열시켜서 도대체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국정 비판에 ‘반국가세력’ 딱지를 붙이고, 이렇게 남 탓하는 국정운영이 계속됐다간 정말 나라가 쪼개지고 거덜나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인천 중구 인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인천 중구 인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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