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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지음 | 후마니타스 | 268쪽 | 1만6000원

“공원 화장실에서 청소해 주면서 사는 여자가 있어. 거기 오래 살았을 걸. 나도 본 지 오래됐는데…” “예전에 광장에서 같이 술 마신 적 있어. 요새도 역에 자주 나와 있을 걸.”

떠도는 소문들을 작은 단서 삼아 길을 나섰다. 거리에서 밥을 먹고 화장실을 집 삼아 잠을 자는 여자들, 홈리스 여성을 찾아서였다. ‘여성 홈리스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현장의 활동가들은 의문을 품었다.

서울의 한 역사에서 여성 홈리스가 짐을 정리하고 있다. 후마니타스 제공

서울의 한 역사에서 여성 홈리스가 짐을 정리하고 있다. 후마니타스 제공

홈리스, 노숙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여성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경제위기에 실직을 하고 거리로 나온 남성 가장은 홈리스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실제 홈리스가 모여있는 서울역광장에서도 여성을 보기는 쉽지 않다.

홈리스행동·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과 홈리스야학 교사들로 이뤄진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은 알고 지낸 홈리스들의 말을 단서로 여성들을 찾아나섰다. 그렇게 2년간 여성 홈리스 7명을 만났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이다.

홈리스 여성들은 만남부터 쉽지 않았다. 일단 찾기도 힘들지만, 찾더라도 휴대전화가 없는 경우가 많아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가 어려웠다. 겨우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되더라도 “불평등, 주거권, 빈곤, 폭력, 젠더 등 우리가 내뱉은 단어에 희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닫았다”고 저자들은 회상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조금씩 벽을 허물었다. 역파(서울역 파출소), 빵줄(무료 급식소 줄), 까마귀(까만 유니폼을 입은 역사 내 보안 직원), 짤짤이(교회 등 종교 시설에서 구제비나 음식을 제공받는 일) 등 수수께끼 같은 언어를 통해 들어가본 그들의 세계에는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여성 홈리스들의 삶은 남성 홈리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슬을 맞고 잔다’는 의미에서 노숙(露宿)이라는 말을 쓰지만 여성 홈리스들은 길에서 자는 경우가 드물었다. 각종 폭력에 노출돼 위험하기 때문이다. 대신 찜질방이나 PC방, 패스트푸드점과 같이 돈을 내고 머물러야 하는 곳에서 잠을 청했다. 지인의 집을 전전하거나 더부살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2015년 10월, 한 여성 노숙인이 서울역 광장에서 자신의 빵을 비둘기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5년 10월, 한 여성 노숙인이 서울역 광장에서 자신의 빵을 비둘기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활동가들은 정부가 이 같은 여성 홈리스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2021년 보건복지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홈리스 1만4404명 중 여성은 3344명이었다. 5명 중 1명꼴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실시하는 ‘노숙인 등의 실태 조사’가 거리, 시설, 쪽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여성 홈리스의 동선에서 비켜서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여성 홈리스의 실제 상황을 담지 못하는 통계인 점을 감안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책에는 여성 홈리스가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마주하는 각종 폭력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들의 증언을 통해 홈리스 사이에 성별 위계가 작동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남성 홈리스들은 바나나를 주며 여성 홈리스에게 잠자리를 요구하거나 무료 급식소에서 만나면 “식당에서 일하고 먹으라”고 눈치를 준다. 그래서 많은 여성 홈리스들은 남성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성들을 피해 숨어 다닌다. 여성 홈리스 정신질환 유병률은 42.1%로 15.8%인 남성보다 훨씬 높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산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산다

그러나 저자들은 여성 홈리스가 겪는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 남성 홈리스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여성 홈리스를 거리에조차 머물지 못하게 만드는 보다 근본 원인은 젠더 관점이 부재한 홈리스 정책 구성이다. 홈리스라는 이름 앞에 ‘여성’이 붙는 순간 처하는 환경과 필요가 달라진다.”

흥미로운 점은 활동가인 일부 저자가 홈리스 여성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존재가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는 점이다. 저자 중 한 명인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쓴 챕터 ‘두 여자’는 홈리스 여성인 영주와 자신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열다섯에 집을 나와 30년 넘게 서울역에서 살고 있는 영주의 경험과 언어들로 최현숙은 혼란을 느끼는 한편 도벽이 있었던 자신의 과거와 겹쳐 보기도 한다.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독특한 제목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여성 홈리스들이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따왔다. 가방 또는 ‘봉다리’들은 이 여성들이 홈리스임을 드러내는 표식이자 차별과 배제의 표적이 되도록 만드는 존재다. 저자들은 이 가방들 속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분투하고 때론 타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고 했다.

제목의 또 다른 의미는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을 응원하는 주문이기도 하다. 안전한 자신만의 방(집)을 갖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다. 저자들은 책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주문을 왼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 최민지 기자 ming@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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