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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 글쓰기의 최저낙원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소설가 박태순 선생(1942~2019)을 기리는 추모 행사는 글쓰기란 무엇이고,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얼마 전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는 유족을 비롯해 30여명의 선후배 작가들이 참석해 박태순 선생의 삶과 문학을 회고하며, 이 시대의 ‘산문정신’은 무엇인지 자문자답하는 시간이 됐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코로나 강점기’ 동안 숱한 한국문학의 거목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제대로 된 작별의 예를 갖추지 못했다. 시인 김지하(1941~2022), 소설가 조해일(1941~2020), 김성동(1947~2022), 조세희(1942~2022), 최일남(1932~2023), 수필가 한승헌(1934~2022), 평론가 김종철(1947~2020)…. 김수영의 시 ‘이 한국문학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광휘에 찬 신현대문학사의 시를 깨알 같은 글씨로 쓰고 싶”은 심정이었노라고 할 수 있을 법하다. 한 사회의 격(格)이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박태순’이라는 이름은 젊은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는 조세희·이문구·황석영·이청준·윤흥길 등과 더불어 1960~1970년대 한국소설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다. ‘외촌동 사람들’ 연작으로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 <정든 땅 언덕 위>(1973)는 서울 변두리 공영주택에 사는 217가구 하층민들의 삶을 핍진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또 ‘국토인문학’이라는 새로운 글쓰기의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기행집 <국토와 민중>(1983)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국토입문서’였다. “한반도를 좁혀 놓고자 애쓰는 것이 정치·경제의 힘이라면, 그 한반도를 넓혀 놓는 작업은 문화가 해야 할 일이다”라는 문장을 보라. 근대화·산업화·도시화 시대 온 국토를 누비며 ‘발품’으로 쓴 곡진한 엘레지(비가)라고 보아야 옳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한국인들에게 ‘국토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제시했다”고 평했다.

추모 행사는 정중하되 재미있었다. 선생의 삶과 문학을 회고하는 소설가 김남일, 평론가 오창은, 시인 이승철 등 후배들의 회고와 평가는 과하지 않았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선생은 스스로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해 ‘못난 인생과 못생긴 문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의 글쓰기는 이야기꾼, 증언자·기록자, 국토인문학자, 르포 작가, 제3세계 문학 번역가, 민주화 및 문학운동가, 잡지 편집자로서의 다채로운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이러한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스스로 민중 곁으로 자발적 하방(下方)을 선택하고자 한 ‘산문정신’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 없다.

어려운 시절이다. 요즘 세상이 망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박태순 선생을 기리는 모임에서 글쓰기의 최저낙원은 어디인가를 자주 생각했다. 모임이 파한 후에도 “민중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나 입이 없다”고 한 선생의 말이 귓전에서 여전히 맴돈다. 문학은 강자 편이 아니라 우리 시대 약소자들 편에서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일본 핵 오염수 방류 등으로 어수선한 시절, 글쓰기의 최저낙원을 다시 생각한다. ‘나부터’ 문체가 조금은 달라져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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