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래시’로 번지는 런던 노후차 운행 금지

정원식 기자

런던 전역으로 확대 시행에 도시 외곽 거주자들 반발
일부 시위대, 차량 감시 카메라 파괴 등 반달리즘 양상
네덜란드·독일선 친환경 반대 정당들 약진…확산 조짐

29일(현지시간) 런던의 초저배출구역 표지판이 훼손돼 있다. A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런던의 초저배출구역 표지판이 훼손돼 있다. AP연합뉴스

기후위기 대응에 반대하는 ‘그린래시(greenlash)’가 주요 선진국에서 확산하는 추세다. 영국 런던에서는 오염물질 배출이 많은 노후 차량의 운행을 규제하자 감시 카메라를 훼손하는 등 반달리즘(공공기물 파손)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인디펜던트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노후 공해 차량이 진입하면 하루 12.5파운드(약 2만1000원)의 요금을 부과하는 초저배출구역(ULEZ) 제도가 이날부터 런던 전역으로 확대 적용됐다. 2006년 이전에 제조된 가솔린 차량과 2015년 이전에 제조된 디젤 차량이 이에 해당한다. 요금을 내지 않으면 180파운드의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

ULEZ는 런던의 공기질 개선을 위해 2019년 처음으로 런던 도심에 적용됐다. 이어 2021년 도심 주변으로 확대됐다가 이번에 런던 모든 자치구가 시행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에 새로 확대 적용된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은 500만명에 달한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이날 “런던 시민 500만명이 추가로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런던시는 ULEZ 제도 시행 이후 유독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26% 감소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노후 차량 소유 비중이 높은 도시 외곽 거주자들은 지난해 연말 물가가 11%나 오르는 등 생활비 부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시 당국이 가난한 시민들을 처벌하는 조처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여론조사업체 ‘레드필드&윈튼’ 조사에 따르면 런던 시민의 58%는 ULEZ 제도를 지지하지만, 런던 외곽으로 갈수록 찬성 비율이 낮아져 찬성과 반대가 각각 39%인 것으로 나타났다.

ULEZ 확대 적용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확대 시행일을 앞두고 최근 연이어 시위를 벌여왔다. 이날도 총리 관저 앞에서는 격렬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고 인디펜던트는 보도했다.

일부 분노한 시위대는 노후 차량의 ULEZ 진입을 감시하기 위한 카메라까지 파괴하고 있다. 런던시는 ULEZ 확대에 따라 카메라 2750대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8월 중순까지 1900대 설비를 완료했는데, 런던 경찰은 이 중 380대 이상이 훼손되거나 도난당했다고 밝혔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파괴 행위를 벌이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라는 이름의 활동가 단체로, 이들은 카메라 전선을 끊거나 렌즈에 페인트를 칠하는 방식으로 카메라를 훼손하고 아예 카메라를 제거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ULEZ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쟁점이다. 칸 시장이 소속된 노동당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지난달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후 칸 시장에게 ULEZ 확대를 재고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리시 수낵 총리도 노동자들에 대한 타격이 우려된다면서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 같은 ‘그린래시’는 다른 주요 국가들에서도 관찰된다.

지난달 네덜란드 지방선거에서는 온실가스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반기를 든 농민시민운동당(BBB)이 압승하면서 상원 제1당이 됐다. BBB는 2019년 창당한 신생 정당이지만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가축 사육 마릿수를 3분의 1로 줄이라는 정부의 환경 정책을 비판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독일에서는 재생에너지 의무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실존적 위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같은 달 스페인 극우 정당 복스 지지 연설에서는 “극단적인 기후 광신”이 경제를 위협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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