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일본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바다에 방류하는 방사능 오염수를 ‘처리수’나 ‘오염처리수’로 바꿔 부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의힘 ‘우리바다지키기 검증 TF’ 성일종 위원장은 지난 30일 “정치 공세를 위해 오염수라 부르고, 핵 폐수라 부르는 것”이라며 용어 변경을 공식화했고, 한덕수 총리는 정부 차원에서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처리수는 방사능 핵종이 제거돼 무해한 물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일본 정부가 쓰는 용어이다. 한국 정부가 방류 1주일 만에 처리수로 방향을 트는 것은 독단적이고 성급하다. 향후 수십년간 이어질 원전 폐로와 오염수 방류에 대해 그나마 인접국이 쥐고 있던 ‘제한적인 발언권’마저 포기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국민의힘은 국내 어민들에게 피해를 미칠 오염수 용어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는 수산업계 일각의 우려를 거론한다. 하지만 이는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불안감은 누군가 불안을 부추겨서 생겨난 게 아니다.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지 않았다면 애초 생겨나지 않았을 불안감이다. 그런 불안감엔 충분히 근거가 있다. 일본 측은 지난 24일부터 바다에 내보내기 시작한 물은 다핵종제거설비를 거치며 방사능 핵종이 대부분 걸러지고 희석된 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설비 성능 검증이 독립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실제로 삼중수소 등 일부 방사능 핵종은 잔존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녹아내린 핵연료와 직접 접촉했던 물이어서 아무리 거르고 희석해도 반감기가 긴 방사능 핵종이 남을 수 있다. 무엇보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2011년 핵사고 후 보여준 불투명한 처리 과정으로 인해 자국민들로부터도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윤석열 대통령은 31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가짜뉴스와 근거 없는 괴담과 선동” 등에 대한 적극 대응을 지시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 70~80%가 호소하는 오염수 불안은 괴담·선동 탓하고, 여전히 사태 파장 축소나 정치적 출구 찾기에만 골몰하는 셈이다. 분명히 하자. 기준치 이하 방사능이라도 생태계에 어떻게 축적되고, 인체에도 어떤 내부피폭·저선량피폭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향후 수십년간 이어질 폐로 과정에서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질지 모른다. 일본 오염수 방류를 막지 않은 한국 정부가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 책임에 대해 성급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