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과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제가 쪼그라들고 있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한국 경제는 설비투자를 제외한 모든 부문이 뒷걸음쳤다. 민간소비가 0.1% 감소했고, 정부소비도 2.1% 줄었다. 수출은 반도체·자동차 등이 늘었지만 석유제품 등이 줄어 0.9% 감소했고, 수입도 원유·천연가스 등을 중심으로 3.7% 줄었다. 2분기 명목 국민총소득(GNI)도 직전 분기보다 0.2% 줄었고,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 GNI는 0.7% 후퇴했다. 다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든 덕분에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가까스로 전 분기 대비 0.6% 증가했다.
윤석열 정부는 ‘상저하고’를 주문처럼 되뇌며 하반기엔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3분기 들어서도 수출·내수 회복세는 보이지 않는다. 8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4% 감소하며 11개월째 내림세다. 한국무역협회 최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4분기 수출 회복을 기대한다고 답한 기업은 12.7%에 그쳤다. 막대한 부채 탓에 가계의 소비 여력도 크게 저하돼 있다. 실질소득이 준 데다 은행에 이자를 내고 나면 쓸 돈이 없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동기보다 0.8% 줄었고, 고금리로 이자 비용이 늘면서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2.8% 급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까지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했다. 석유류와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승 폭이 예상보다 커졌다. ‘부자 감세’ 정책에 경기 부진으로 세수 결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 7월까지 누적 국세 수입은 217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조4000억원 줄었다.
한국 경제는 내수·수출·세수가 모두 부진한 전형적인 불황 국면이다. 상저하저의 ‘L자형’ 장기 침체가 현실화하고 있다. 소득 감소와 고물가·고금리로 민생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데도 정부의 긴장감은 보이지 않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4분기 중에는 수출이 플러스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9월 이후에는 상저하고 전망이 지표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온통 적신호가 켜진 생산·소득·물가·재정 지표를 보는 것도 무섭지만, 경제가 이 지경인데도 특단의 대책 없이 막연한 낙관론을 펴는 정부가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