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8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출석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실 관계자 등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 장관이 위법하게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개입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박 대령 측도 국방부 김동혁 검찰단장과 유재은 법무관리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채 상병 사건은 군사법원법상 군에서 수사할 수 없는 것이어서 경찰에 적법하게 이첩했는데 국방부 검찰단이 영장 없이 자료를 회수해갔다는 게 골자다.
박 대령은 지난 7월19일 경북 예천군 수해 현장에서 구명조끼도 없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채 상병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국방부 등으로부터 과실치사 혐의자를 대대장 이하로 축소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이를 거부하다 결국 ‘집단항명의 수괴’가 됐다. 군검찰은 박 대령에 대해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군사법원은 기각했다.
지금까지 나온 당사자들 발언과 사건 정황을 보면,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박 대령이 아니라 이 장관 등 국방부와 군 수뇌부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당초 수사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고 한 이 장관은 지난 6일 국회에 나와 박주민 민주당 의원 질의에 “지휘관계에 있는 8명 전부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했기 때문에 수사 결과의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군검찰이 청구한 박 대령 구속영장엔 이 장관이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 대령의 항명 근거로 제기한 것인데 오히려 이 장관의 수사 개입 행위를 인정한 꼴이 됐다.
이 장관의 지시는 군 지휘부의 수사 개입을 막고 수사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법원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 장관의 위법한 수사 개입 배경엔 사단장 등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데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기 때문이라고 박 대령이 전한 정황도 있다. 사실이라면 사건 축소를 위해 국군통수권자까지 나선 것이다.
채 상병 사건은 이제 권력의 수사 은폐·외압 사건으로 비화했다. 채 상병 순직의 진상은 물론이고, 박 대령 등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외압 의혹도 규명해야 한다. 국회에 ‘채 상병 사망 사건 및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법’이 발의됐지만 시행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공수처에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사건 진상을 규명하고 불법행위를 한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한다. 공수처는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에 임하기 바란다.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8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