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본 직후였다. 1950년대 미국과 2023년 대한민국에서 똑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 마치 평행세계처럼 보였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자 2차 세계대전을 끝낸 공로자로 추앙받았지만 얼마 안 가서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 이후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한 것이 ‘소련을 이롭게 하려는 행위’로 의심받은 것이다. 그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발발 훨씬 이전에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졌던 이력들까지 낱낱이 까발려졌다. 영화는 그 과정을 지나치다 싶도록 자세히 보여준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의 러닝타임과 맞먹을 정도다. 아마도 이 영화의 주된 질문이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실행한 이유가 무엇일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 더하자면 “그랬으면서 이후 수소폭탄 개발에는 왜 반대했을까?”라는 질문도 있겠다.
영화 초반에는 오펜하이머와 다른 과학자들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양자역학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학문적 열의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 연구 결과가 원자폭탄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과학자들의 반응은 갈린다. 그중에서 오펜하이머는 “나치보다 더 빨리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명분을 자기 일의 의미로 삼는다. 독일 출신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그에게는 상당한 명분이었을 것이다. 그 명분이 가장 컸는지 아니면 자신과 동료들의 연구성과가 거대한 국책사업을 통해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자체에 매료되고 흥분한 이유가 더 컸는지, 당시에는 구분하기 어려웠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는 그 명분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이용당하기를 선택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한 것이 바로 그 근거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영광을 유지하고 싶었다면, 고위직으로 승승장구하고 싶었다면 “공산주의에 맞선다”는 이념에도 쉽게 올라탈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영화는 그 이유를 오펜하이머가 원폭 투하로 ‘대량살상’의 실체를 실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서, 그 파괴력이 자칫 전 인류를 멸망시킬까봐 우려했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한다.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점이 있다. 그가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이념’을 수단으로 삼아 쉽게 갈아타는 인물이었다면 2023년에 그를 영화 주인공으로 만날 수는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홍범도 장군 논란이 전개되던 중, 윤석열 대통령은 느닷없이 “제일 중요한 건 이념”이라고 공식석상에서 외쳤다. 여기서 말하는 ‘이념’이란 뭘까? 아무래도 네 편 내 편을 나눠서 상대를 철저한 적으로 삼기 위한 기준 같은데 국무총리, 장관, 대변인들이 매일같이 쳐놓는 말의 장벽 때문에 제대로 따져 묻기도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펼쳐지면 사람들은 자연히 거기서 이득을 보는 사람을 찾게 된다. 영화에서 루이스 스트라우스 미국 전 상무부 장관이 빌런 역할을 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념’에 올라탄 사람은 누구이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당장은 드러나지 않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서사의 주인공이 누구이고, 누가 빌런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