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월드투어 미국 공연 사진. 블랙핑크는 오는 16~17일 월드투어 피날레를 서울 고척돔에서 연다. YG 제공
X(구 트위터)에 올라온 블랙핑크 월드투어 콘서트 티켓 아옮(아이디 옮기기) 홍보글. X 화면 갈무리
‘아옮 ○’ ‘아옮 실패 시 전액 환불’.
‘아이디 옮기기’의 줄임말인 ‘아옮’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 최근 K팝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본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단어다. 철수의 아이디로 온라인 구매한 티켓을 영희에게 양도할 때, 그냥 티켓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영희가 티켓을 산 것처럼 철수의 표를 취소하고 영희가 이를 구매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아옮 업체’에 돈을 주고 진행한다.
굳이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본인인증’ 절차 때문이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돌 콘서트는 티켓만 소지했다고 입장할 수 없다. 콘서트장 앞에서 ‘내가 내 명의로 이 티켓을 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티켓을 직접 샀건, 양도를 받았건, 본인인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다. K팝 인기가 높아지면서 원래 티켓값에 추가로 돈을 붙여 파는 암표, ‘플미’(프리미엄)를 막기 위한 것이다.
‘본인인증’ 절차 도입하자 “아이디 옮겨드려요” 업체 성행
아이돌 콘서트 표 구하기가 어려줘지면서 프리미엄을 붙여 암표를 사고, 이 과정에서 구매자 아이디를 옮겨주는 업체도 생겼다. 픽사베이
문제는 이런 절차가 생기자 아예 플미에 아옮값까지 더한 형태로 양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옮 업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X(구 트위터)에 ‘아옮’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16~17일 열리는 블랙핑크 콘서트와 관련해 ‘블랙핑크 콘서트 아이디 옮기기 완료 ○○○건’ 등 ‘아옮 경력’을 홍보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아이디 옮기는 과정을 짧은 영상으로 찍어 게시하거나 양도받은 이와의 카카오톡 대화를 캡처해 올리는 업체도 많다.
우후죽순 업체가 생기면서 티켓 사기도 많아졌다. 걸그룹 아이브(IVE) 팬인 10대 A씨는 다음달 예정된 아이브의 첫 월드투어 콘서트 티켓을 양도받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콘서트의 일반석 가격은 15만4000원, VIP석은 19만8000원이다. A씨는 원래 티켓값에 프리미엄, 아이디 옮겨주는 값을 합해 40만원을 제시한 사람에게 돈을 보냈다. 티켓 예매 내역 캡처 사진 등 나름의 인증을 받았지만, 돈을 송금하자마자 채팅방에서 강퇴당한 뒤 판매자와는 연락이 두절됐다. A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암표는 일단 잘못된 경로로 티켓을 얻는 것이고 다시 돌려받는 건 힘들 것 같아서요. 계좌 말고는 아는 정보가 없는데, 계좌도 도용이면 정보가 없는 거니까요.”
암표는 못잡고 팬만 잡는 본인인증?
지난 7월 열린 세븐틴 콘서트 사진. 플레디스 제공.
대리 티케팅, 플미, 아옮 등을 통해 티켓을 얻는 방식에 대해서는 팬덤의 시선도 곱지 않다. 다 같이 하지 말아야 하는데, 누군가 시작해 너도나도 뛰어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티켓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아이돌 팬인 B씨는 “(그런 방법은) 공정한 방법이 아니니 당연히 나쁘다. 그리고 그 돈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돌아가지도 않는다. 모르는 사람들이 이 시장에 들어와서 티켓값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가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소속사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애초에 잡겠다고 한 암표는 잡지 못하면서 과도한 본인인증으로 팬들만 고생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21~22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세븐틴 콘서트에서는 폭염의 날씨에 야외에서 장시간 본인인증을 해 팬들의 원성을 샀다. 서울 최고기온이 34.3도까지 오른 무더운 날이었지만, 본인인증을 받는 곳에는 그늘 한 점 없었다. C씨도 이날 오후 1시30분~2시쯤 본인인증 줄에 섰다. “본인인증을 받아야 캐럿존(팬클럽만 받을 수 있는 포토카드 수령 존)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그 시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고 말했다. 30분이 지나는 동안 줄은 반도 줄지 않았다. 스태프는 몇몇 사람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쓰고 있던 우산을 접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C씨는 “뒤쪽에 줄 서 있던 한 분이 쓰러지셨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산을 접어 네줄서기를 해 줄을 짧게 하려는 것 같았는데, 천막도 없고 (바닥은) 고무를 덮어놔서 더 더웠던 것 같다”며 “사람이 많으니 인터파크 앱이 안 돼 모바일 티켓을 여는 게 굉장히 불편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C씨는 결국 “덥고 토할 것 같아서” 일단 줄서기를 포기했다가, 공연 시작 직전에 줄을 다시 서 본인인증을 받았다. 그는 “본인인증은 정말 쓸데없다고 생각한다. 프리미엄 티켓 비용이 올라가는 것도 막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매크로 활용 티켓팅에 ‘기계와 사람’ 간 경쟁
‘일반적인 티케팅’으로 좋은 좌석을 잡는 게 어려워진 것은 단순히 경쟁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일까.
인기 콘서트의 티켓 경쟁은 언제나 치열했다. 암표도 있었다. 다만 많은 아이돌 팬들은 최근 들어 매크로(자동완성기능)를 쓰는 업체를 활용한 ‘대리 티케팅’이 더 늘어난 것 같다고 추정한다. A씨도 “제가 티케팅을 해도 운이 정말 좋으면 좋은 자리를 잡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며 “대리 티케팅 업체나 개인이 매크로를 사용하면 (그걸) 사람이 이기고 좋은 자리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람 간의 경쟁이 아니라 사람과 기계 간의 경쟁이나 다름없어, 암표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B씨는 최근 NCT 팬인 지인이 대리 티케팅을 하려다 금액을 낮게 불렀다는 이유로 업체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업체가 ‘얼마를 제시하냐’고 해서 30만원을 불렀는데 ‘죄송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모두가 대리를 맡겨서 대리도 못 잡는다는 게 어질어질하다”고 했다.
지난 6월 열린 NCT 콘서트에서는 티켓 판매 업체인 YES24가 부정 예매로 의심되는 티켓을 단체로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YES24 측은 “불법 예매나 불법 거래가 확인된 건에 한해 티켓을 취소했다”며 “불법 의심 정황을 기획사에 먼저 전달하면 취소에 대한 최종 결정은 기획사에서 한다”고 밝혔다.
최근 열린 NCT 콘서트의 티켓 예매처였던 YES24에서 올렸던 티켓 양도 관련 공지. 티켓 양도나 구매대행 등은 엄격히 금지한다고 공지돼 있다. YES24 홈페이지 갈무리
티켓 예매처들은 고민이 많다. YES24 측은 “보안장비를 통한 실시간 자동 차단과 수동 차단, 블랙리스트 관리 등의 방법으로 매크로 및 부정 예매에 대응하고 있다”며 “다만 특정 매크로를 막으면 또 다른 매크로가 생기기 때문에 예매처와 업자들 간 ‘창과 방패’ 싸움이 반복된다. 100% 차단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아옮은 두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가 기예매자가 취소를 하는 동시에 해당 좌석을 잡는 것인데, 최근에 좌석 취소 시 즉시 풀지 않고 ‘랜덤 오픈’으로 변경하는 작업을 했다. 부정 예매가 과도하게 발생하는 인기 공연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매크로 사용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렇게까지 예매한 것은) ‘신의 손’일 거라고 예상되는 범위를 내부 규정으로 정해 방어하고 있다”고 했다.
오는 16~17일 열리는 블랙핑크 콘서트 예매처인 인터파크 티켓에서 올린 공지사항. 인터파크 홈페이지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