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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의 천재들

요즘 내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낙관주의자의 명단을 수집하는 취미이다. 개인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신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취미가 있다고, 이제 더 이상 뭘 좀 늘리지 말라고 붙들어 말릴 것이다. 백 번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호기심과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해 뒤죽박죽별장처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새로 뭘 하는 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사치다. 하지만 이번 취미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포기할 수가 없다. 회원권을 끊지 않아도 되며 지하철로 이동하는 틈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 몇 분간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너무너무 뿌듯하다. 이제부터 최근 내 취미 활동의 결과를 자랑하고자 한다.

루트힐트 슈팡겐베르크는 베를린 ‘뷔허보겐 서점’(Bucherbogen am Savignyplatz)의 창업자이다. 서점 직원이었던 그는 1980년에 사비니 광장 고가철로 밑의 유휴 공간을 임대한 뒤 지금의 뷔허보겐 서점을 열었다. ‘뷔허’는 책, ‘보겐’은 반원형 둥근 천장을 일컫는 건축용어다. 트럭이나 세워두던 컴컴한 철로 아래에 서점을 낸다는 건 모험이었다. 책을 보고 있으면 머리 위로 우당탕탕 도시철도열차가 지나간다. 아치형 교각을 낀 한 칸 반 크기의 예술서적 전문서점은 40년이 지난 지금 다섯 칸으로 늘어났다. 독자가 원하는 책을 얼른 찾기가 어려운 것이 이 서점의 특징이다. 책을 특별히 분류하지 않고 그냥 쌓아두거나 늘어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들은 한참동안 책을 찾는다. 한 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으면 이 서점의 단골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찾던 책을 끝내 못 찾고 엉뚱한 책을 사들고 나가는 손님이 더 많은 날도 있다. 아무리 살펴도 찾는 책이 없다고 하면 그 손님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하면서 근처의 다른 서점을 소개해준다. 그는 언제나 책의 존재를 낙관한다. 원하는 책은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이니, 가능하면 많은 서점을 돌아보라고 권유한다.

두 번째 수집한 낙관주의자는 제천에 있는 기적의도서관 강정아 관장님이다. 2000년대 후반 나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모여 정기적으로 사서 선생님들과 공부모임을 했는데 거기서 강정아 선생님을 만났다. 열정이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생각했다. 항상 책과 어린이에 관한 무슨 재미있는 일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중 몇 가지 아이디어는 같이 실행에 옮겼는데 ‘어린이를 위한 인문학’이라는 프로그램이 기억난다. 열 살 남짓의 어린이들과 두꺼운 책을 탑처럼 쌓아놓고 ‘우리 나름의 인문학’을 하면서 겨울방학을 보냈다. 둥근 뻥튀기를 먹으면서 하이데거를,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을 이야기했다.

2013년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아티스트 이능룡, 싱어송라이터 임주연과 함께 그림책 음악 공연을 열었던 건 잊을 수 없다. 한창 유행하던 록페스티벌을 어린이에게도 열어줄 수 없을까 궁리했던 결과다. 강정아 관장님은 무엇을 제안하든 “도서관에서 안 될 게 뭐가 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제천의 어린 시민들과 함께 이수지의 그림책 <검은 새>를 읽고 비틀스의 ‘Black Bird’를 불렀다. 스피커도 앰프도 빌려서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를 읽고 아이들과 ‘먼지가 되어’를 목청 높여 불렀다. 뷰티풀 제천 라이프였다.

낙관주의자 수집이 왜 좋은 취미인가 하면 이 세상에 헛된 일은 없다는 믿음을 복원시켜주기 때문이다. 세상을 헛되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낙관주의자를 싫어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무관하면 만사가 허사가 되게 하는 것이 목표인데 낙관주의자들은 늘 그걸 우연적으로 방해하니까 싫어한다.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책이 있는 곳에는 낙관주의자의 결사체가 생기기 때문이다. 베를린까지 갈 수는 없고 이번 주말에는 제천기적의도서관에서 펴내는 <책도깨비>를 읽어야겠다. 거기서 어린이 낙관주의자들의 글을 읽어야겠다. 낙관주의 하면 또 어린이들이 천재니까.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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