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물 줄줄 티라뇽 씨
퉁옌 지음, 류페이페이·창보원 그림, 류희정 옮김
현암주니어 | 40쪽 | 1만4000원
눈보다 세 배는 큰 콧구멍을 가진 공룡 티라뇽씨에게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숨을 훅 들이신 뒤 크게 내쉬면, 콧구멍에서 거대한 불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마음먹을 때마다 언제든 뜨겁고 새빨간 불을 내뿜는다는 것은 티라뇽씨의 큰 자부심이었다. 사람들도 티라뇽씨의 ‘불대포 콧구멍’을 사랑했다. 인기 스타가 된 티라뇽씨는 ‘불 뿜는 용’이라는 제목의 영화에도 출연하고, 광고도 찍고, 온갖 언론사와 인터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시련이 닥친다. 티라뇽씨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티라뇽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준비하다 자기도 모르게 “에취!”하고 크게 재채기를 한다. 감기일까? 티라뇽씨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방송국으로 간다. 분장을 마친 뒤 감독의 ‘액션’ 사인에 맞춰 가슴을 젖혀 크고 힘차게 숨을 내뿜은 순간, 나오는 것은 불대포가 아닌 물대포 정확히는 콧물 대포다. 폭포수처럼 쏟아진 콧물로 촬영장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콧물 줄줄 티라뇽’이 된 티라뇽씨는 어쩔 수 없이 일을 쉬게 된다.
내가 잘나가는 운동선수인데 부상을 당해 운동을 중단해야 한다면? 인기 가수인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다면? 티라뇽씨에게 닥친 일은 직업인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일 것이다. 나는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재난이 닥쳤을까. 세상을 원망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 결국은 우울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티라뇽씨도 그렇다. 다시 불을 뿜으려 매운 고추를 먹어보고, 불처럼 화를 내보기도 하지만 나오는 것은 콧물뿐이다.
살다 보면 가끔 계획에 없던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뜨거운 불을 뿜던 코가 갑자기 차갑게 식어버렸을 때, 가만히 앉아 다시 코가 뜨거워지길 기다릴지, 아니면 방향을 바꿔 다른 시도를 해볼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바꾼 방향이 좋을지 나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새 방향을 택한 나에겐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다. <콧물 줄줄 티라뇽씨>는 그런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불 뿜는 능력을 잃은 티라뇽씨는 코에서 나오는 물대포로 소방관이 된다. 저자 퉁옌이 비염으로 재채기를 하다 이야기를 떠올렸다. 세계적 권위를 가진 그림책 상인 ‘볼로냐 라가치상’의 2023 어메이징 북셸프에 선정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