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문서·서명 하나 안 남긴 ‘5박6일 밀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시에 있는 ‘유리 가가린’ 전투기 생산공장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북한 최신 전투기인 ‘미그-29’ 조립 기술 내줄 가능성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 군사위성·핵전력 공유 쉽잖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5박6일 러시아 방문은 양국 간 군사협력에 방점이 찍혔다. 양국 정상회담 내용과 구체적군사협력 내용은 공개되지 않아 러시아가 북한에 기술을 이전할 범위에 관심이 쏠린다.
북·러 정상은 지난 13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진행하지 않았고 별도의 문서에 서명하지도 않았다. 양국 무기 거래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보를 감춰 한·미·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차원일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주에 위치한 유리 가가린 전투기 생산공장에서 러시아 최첨단 전투기들을 살펴봤다. 북한의 육해공군 중에서 가장 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공군력 강화를 모색하려는 행보로 분석된다. 북한의 주력 전투기는 미그(MiG)-17, 미그-21로 대부분 1960년대 이전에 생산된 노후 기종이다.
항공기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구소련이 대북 지원을 많이 한 분야다. 6·25전쟁에서 공군력 열세에 뼈아픈 교훈을 얻은 김일성 주석은 정전 후 신형 공군기와 대공무기 도입에 열을 올렸는데 대부분을 소련에서 지원받았다. 소련은 1951년부터 1956년 사이에 북한에 전투기인 미그-15, 미그-15 bis, 미그-17F, 미그-17PF와 요격기 일루신(Il)-10, 폭격기 투폴레프(Tu)-2 등 항공기 총 800여대를 제공했다.
김 위원장이 살펴본 최첨단 5세대 다목적 전투기 수호이(Su)-57을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북한에서 쓰는 군용기 부품을 공급하거나 최신 전투기인 4세대 미그-29를 제공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18일 “북한 내 미그-29 조립공장을 활용해 부품 형태로 공급해 현지에서 조립하면 제공 사실을 숨기기도 용이하다”고 했다.
위성 기술도 러시아가 북한에 이전할 가능성이 큰 분야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3일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인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고 했다.
북·러가 군사동맹 관계가 아닌 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점은 변수다. 위성 기술을 지원하더라도 군사적 목적이 아닌 일반 위성 기술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위성을 실어나를 발사체 제작 능력까지 북한과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사회는 위성 발사체 기술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다며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정한다.
같은 맥락에서 러시아가 핵무기 관련 기술을 이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김 위원장이 지난 16일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부를 찾아 핵추진잠수함이 아닌 대잠호위함에 승선한 것도 북·러 군사협력의 현주소를 나타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국내 기항한 미국 전략핵잠수함에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김 위원장은 방러 기간 군수시설 견학을 통해 북한의 핵전력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기존 군대를 어떤 방향으로 바꿔야 할지 등에 대해 구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