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독일 등 도입 ‘공급망 실사법’ 국내 발의에 기업들 긴장
자회사·협력사까지 관리 및 정보 공개…EU선 수출금지 등 논의
한경협, 대응 토론회 “규제 앞서 인프라 구축·교육 등 선행돼야”
2021년 6월 세계 최대 수자원 기업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수에즈는 환경단체들에 의해 제소됐다. 수에즈의 칠레 자회사 공장에서 2000ℓ의 기름 유출로, 10일간 물 공급이 중단되는 주민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사고 전 수에즈가 칠레 감독기구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음에도 개선하지 않았고, 사고 직후에 대체 식수원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올해 1월 프랑스의 환경단체들은 프랑스 음식료업체인 다농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환경단체는 “다농이 내놓은 지속 가능성 목표에는 2025년까지 100% 재활용 가능한 포장을 활용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포장재로 활용한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은 9%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견제는 기업들이 원료나 부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인권이나 환경을 침해한 사례가 없는지 점검을 의무화하는 프랑스판 ‘공급망 실사법’이 2017년 도입됐기에 가능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국에서 도입한 공급망 실사법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되자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8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공급망 실사 대응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1일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계기로 국내에서 공급망 실사법 도입의 의미, 문제점 및 기업의 대응 방안에 초점을 맞춰 열렸다.
‘기업 인권·환경 보호법’은 해당 기업이 자기 기업뿐 아니라 자회사와 협력사에서 인권·환경 문제가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관련 내용을 공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사회에 기업의 인권·환경 실사 이행에 관한 계획을 보고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처분 근거 규정도 마련했다. 피해자 지원과 분쟁 해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인권·환경 침해 피해자 지원기금을 설치하는 내용도 담겼다. 독일은 올해 초부터 공급망 실사법을 시행 중이다. 고용인원 3000명 이상을 둔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독일 공급망 실사법은 자국 기업뿐만 아니라 자국 내 외국인 기업에도 적용된다.
기업들도 이에 대응해 공급망 관리에 노력을 더 기울이고 있다. 유럽 최대 구리 제련 회사인 아우루비스는 공급업체에 대한 실사를 통해 인권을 침해하거나 환경 규제를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준법 감시부서와 지속 가능성 부서에서 추가 조사를 진행한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경영진은 공급업체와 계약 여부나 계약 시, 추가 제한 사항을 논의한다.
유럽연합(EU)에서는 ‘지속 가능한 기업 공급망 실사 지침’이 연내 합의를 위해 논의되고 있다. 위반 시 벌금 외에도 공공조달 입찰 배제나 수출금지 등의 행정적 제재도 부과될 수 있어 국내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에서는 공급망 실사 입법 움직임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유정주 한경협 기업제도팀장은 “법제화를 하더라도 공급망 실사에 대한 규제보다 인프라 구축, 정보제공, 교육 등의 지원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송세련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경영포럼위원장은 “향후 입법 논의 과정에서 인권·환경 관련 국제규범에 대한 검토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