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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디지털 마녀사냥]

‘프로젝트 문’ 사건 50일, 회사 법적 대응 시작

남성 유저 눈치…‘여성 노동자 보호’는 후순위

게임업계에서 ‘페미니즘’ 낙인을 찍어 여성 노동자를 ‘색출’하는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 게임 이용자(유저)들이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이하 일러스트 작가)나 웹툰 작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블로그 등을 뒤지고 자신들의 잣대로 문제제기하면 회사가 받아들면서 문제는 커진다. 회사는 ‘SNS 사용 규제’ ‘해고’ 등으로 대응했다.

2016년 넥슨 등 온라인게임 제작에 참여한 성우 김자연씨는 ‘여성들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티셔츠를 입고 자신의 SNS에 인증샷을 올렸다가 유저들의 반발에 하차했다. 2018년 IMC게임즈 유저들이 한 일러스트 작가의 ‘페미니즘 사상’을 문제 삼으며 ‘퇴출’을 요구했다. 사측은 일러스트 작가가 개인 SNS 계정으로 여성인권단체를 팔로우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해당 직원은 일을 그만둬야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게임업계 내 여성혐오 및 차별적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문제는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7월 프로젝트 문에서 개발한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 유저들이 “페미니스트 진영발 밈(meme·인터넷에서 모방 형태로 전파되는 문화 요소 및 유행)을 사용했다”면서 여성 일러스트 작가의 신상을 털고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반복되는 게임업계의 ‘사상검증’ 실태와 원인, 그 해결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김민성 PM유저협회 대표가 18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프로젝트 문’ 본사 앞에서 최근 게임노동자 사상 검증에 대해 항의하는 트럭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민성 PM유저협회 대표가 18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프로젝트 문’ 본사 앞에서 최근 게임노동자 사상 검증에 대해 항의하는 트럭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지난 7월 25일 남성 10여명이 경기 수원시 영통구 프로젝트 문 게임 회사를 찾았다. 이중 한 명은 양복 차림에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엑스’ 표시의 눈으로 입이 귀까지 찢어져 웃고 있는 얼굴이 사진으로만 봐도 기괴해 보였다. 이들은 ‘인증샷’을 찍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을 공유하고 후기를 올렸다.

지난 7월25일 항의를 위해 프로젝트 문 본사를 찾은 게임 유저들로, 가면을 쓴 한 유저는 자신의 모습을 인증샷으로 남겼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지난 7월25일 항의를 위해 프로젝트 문 본사를 찾은 게임 유저들로, 가면을 쓴 한 유저는 자신의 모습을 인증샷으로 남겼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이날 모인 사람들은 게임 회사 ‘프로젝트 문’이 출시한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의 이용자(유저)들이었다. “‘페미니스트 진영발 밈을 사용한’ 여성 일러스트 작가에 대해 회사가 ‘어떤 조처를 할 것인지’ 묻기 위해 모였다.” 이들이 후기에서 밝힌 목적이다. 그간 남성 유저들이 온라인상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압박하는 일은 많았지만,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본사를 직접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행히 이날은 피해 작가가 회사에 없었다.

유저 ‘SNS 털기’, 회사 “사내 규칙 위반”

“(본인들이 저격한) 일러스트 작가와 관련해 트위터로 작성했던 특정 사상에 경도된 발언, 비하적인 발언들이 올라왔는데, 대표님과 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유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간담회 내용’이라며 본사 직원과 나눈 질문과 답변 전문을 올렸다. 이들은 “우리 여기 쓴 돈도 많은데 마지막 기회를 살리시는 게 낫지 않나”라고도 했다. 돈을 쓰는 소비자, 즉 자신들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얘기다. 이들은 “기업 가치에 매우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문제”라며 회사를 압박하기도 했다.

유저들이 주장하는 ‘특정 사상에 경도된 발언, 비하 발언’은 주로 불법촬영 반대 등 여성 인권에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피해 작가가 입사하기 4년 전인 2017년 트윗, 리트윗한 기록은 물론이고 잠금 계정까지 뒤졌다.

유저들이 사상검증에 나선 계기는 ‘림버스 컴퍼니’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가 노출 없는 해녀복을 입고 등장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이 캐릭터가 “별로 섹시하지 않다”며 불만을 가졌고 해당 작가 ‘색출’에 나섰는데, 작업한 사람이 남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대상을 바꿨다. 결국 게임 개발에 참여한 한 여성 작가를 찾았고 그의 SNS를 ‘털었다.’

📌[플랫]캐릭터 신체 노출 적다고 항의, 신상 털어 ‘페미니즘 마녀사냥’

프로젝트 문에서 낸 세 개의 입장문(7월26일, 8월3일, 9월16일). SNS 갈무리 사진 크게보기

프로젝트 문에서 낸 세 개의 입장문(7월26일, 8월3일, 9월16일). SNS 갈무리

경향신문 취재 결과 프로젝트 문은 오히려 작가에게 SNS에서 사용하는 닉네임(별명) 관리를 못한 책임을 물었다. 회사는 “사내 규칙에 대한 위반”이라고 했다. 유저들이 온라인에서 공격하고 일터까지 찾아오면서 해당 작가는 신변 위협을 느꼈지만 정작 회사는 노동자 보호에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회사는 유저들의 ‘경고’를 받아들이는듯 빠르게 입장문을 냈다. 유저들이 회사를 찾아 항의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26일 자정이었다. 회사는 “논란이 된 직원분과 계약은 종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PM유저협회, 경기청년유니온, IT노조,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이하 디콘지회)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사상 검증에 따른 것 아니냐”는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프로젝트 문은 지난달 3일 다시 입장문을 내고 “논란이 된 작업자분에게 사상적인 이유를 문제 삼지 않았고, 더불어 해고 통보를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회사, 법적 대응 나서…“노동자 보호하라” 트럭시위

사건 발생 후 50일이 지나고 회사는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문제제기한 단체들에 법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 8일 프로젝트 문은 경기청년유니온과 PM유저협회 등에 “7월 26일 공지 게시 전 작업자가 먼저 사직 의사를 밝혔으며, 작업자 의사와 요구를 수용해 원만하게 합의했다”며 고소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회사는 지난 16일 “사실 근거 없는 과격한 비난과 허위사실 유포 등이 지속되고 있다. 강경하게 법적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18일 PM유저협회가 경기 수원시 영통구 ‘프로젝트 문’ 본사 앞에서 회사를 규탄하는 트럭시위를 시작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18일 PM유저협회가 경기 수원시 영통구 ‘프로젝트 문’ 본사 앞에서 회사를 규탄하는 트럭시위를 시작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PM유저협회는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시도”라고 규탄했다. 김민성 PM유저협회 대표는 “김지훈 대표는 (유저들의) 사상검증에 동조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로 어떻게 노동자 보호조치를 강화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는 오는 22일까지 일주일 동안 프로젝트 문 본사와 게임 회사가 모여 있는 판교 일대에서 트럭시위를 벌인다.

입사 전 SNS 사용 관련 ‘동의서’ 받는 회사

게임 회사들이 일부 유저들의 ‘과도한 문제제기’에 휘둘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회사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입사 전 SNS 이용에 관련한 ‘동의서’를 쓰도록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한 게임 회사에 합격한 일러스트 작가 A씨는 근로계약서를 쓸 때 회사로부터 SNS 이용에 대한 ‘동의서’도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A씨는 “SNS상에서 (저로 인한) 문제가 발생해 회사에 피해가 가면 배상하라는 식의 내용이었다”라고 말했다. 회사 문서에는 어떤 문제인지 특정되지 않았지만 A씨는 이번 사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격 대상’이 되는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로 이해했다고 했다.

그는 이미 7년 전 ‘SNS상의 문제’로 회사를 그만둔 경험이 있다. 2016년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트윗을 올린 게 발단이었다. 회사는 A씨에게 해당 트윗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진 면담에서 회사 측은 그에게 “일베냐 메갈이냐”, “고객층이 일베면 (우리도) 일베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해 A씨는 미련 없이 게임업계를 떠났다.

일러스트 작가 A씨가 김자연 성우에 연대하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여성들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여성들). 유선희 기자

일러스트 작가 A씨가 김자연 성우에 연대하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여성들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여성들). 유선희 기자

그러나 오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A씨는 여성을 주체로 한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시 현장에 돌아왔다. 게임업계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듯 함께 입사한 남성 일러스트 작가에게는 SNS 이용을 제재하는 내용이 담긴 동의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회사가 비겁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A씨는 길었던 공백을 채우자는 마음만 먹기로 했지만 언제 또 무너질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아예 해외로 떠나는 작가들도 있다. 2018년 한 작가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자 아이돌 글을 SNS에 공유했다는 이유로 게임 유저들에게 온라인상에서 공격당했다. 게임 회사 X.D 글로벌은 해당 작가에게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트윗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작가가 거절하자 회사는 그의 그림을 삭제하고 일을 못하게 했다. 현재 이 작가는 일본에서 활동 중이다.

“일부 남성들의 목소리가 과대대표”

“면접 과정, 입사 이후 성차별적인 업무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C씨는 현재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면접 과정, 입사 이후 성차별적인 업무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C씨는 현재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디콘지회에 따르면 김자연 성우에 대한 지지가 이어졌던 2016년 이후 현재까지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디지털 창작 노동자들의 신고 건수가 43건에 이른다. 이 중 14건은 최근 프로젝트 문 사건 이후 디콘지회가 별도로 받은 건이다. ‘부당한 처우’는 해고나 업무 배제, SNS 삭제 압박 등을 말한다. 프로젝트 문에서 만화 작가로 일한 B씨는 “회사가 노동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고 ‘부품’처럼 보는 것이 문제”라면서 “회사가 유저들의 요구를 받아주니까 마치 게임을 하듯 ‘디지털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 남성들의 목소리가 업계 내부에서 과대대표되는 것이 문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의 게임 이용률은 73.4%로 남성(75.3%)과 큰 차이가 없다. 게임 회사 쿠키런과 웹툰 쪽에서 일한 만화 작가 C씨는 “‘남성향 작품(남성 수용자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진 게임이나 웹툰)만 너무 규제가 많이 들어오는 것 같지 않나’와 같은 (회사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며 “(회사는) 면접 과정에서 제가 이력서에 적지도 않은 SNS를 찾아 페미니즘 관련 글을 올린 것을 언급하며 ‘문제가 터지면 책임질 거냐’고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게임은 물론이고 웹툰, 웹소설 소비자 중 여성들도 많은데 일부 남성들 목소리가 너무 과대대표되고 있다”며 “마치 여성을 지워버리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게임업계 종사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많다. 이같은 구조에서 남성 소비자를 주로 의식하다보니 여성 캐릭터는 선정적으로 그려진다. C씨는 “남성향 작품에서 여성의 몸이 굉장히 적나라하게 묘사되는데도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수위가 너무 관대하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게임업계 내부에 여성 성상품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 문 사건도 핵심은 ‘왜 여성의 옷을 많이 벗기지 않았느냐’ 아닌가”라며 “여성을 성상품화하고 남성의 오락거리로 삼는데 전혀 문제의식이 없다”고 말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선정성, 폭력성, 사행성 등 7가지를 따져 등급을 분류한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등급 부적정으로 시정 요청한 오픈마켓 게임물(구글이나 카카오 등 오픈마켓을 통해 배포·판매할 수 있는 게임물)은 1만8560건으로, 2021년(1만4270건) 대비 30.1% 증가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

2018년 김자연 성우 사건 이후 일러스트 작가들이 연대를 위해 개최한 ‘내일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를 보고 참석자들이 남긴 포스트잇 일부. 유선희 기자

2018년 김자연 성우 사건 이후 일러스트 작가들이 연대를 위해 개최한 ‘내일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를 보고 참석자들이 남긴 포스트잇 일부. 유선희 기자

계속되는 게임 유저들의 ‘SNS 뒤지기’, 게임업계의 ‘사상검증’ 사건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직결된다. 여성들은 성차별적인 업무 환경에 노출된 한편 언제라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일해야 하는 형편이다.

게임은 다른 콘텐츠보다 유저들의 상호작용이 크다. 유저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추천을 실시간 공유하면 회사 입장에서 홍보가 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유저들이 부정적인 요구사항을 내놓을 때, 지금처럼 유저들의 ‘검열’이 노동자 개인에게 향하며 ‘마녀사냥’이 벌어졌을 때 회사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창작 노동자들은 대부분 ‘프리랜서’이다보니 회사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디콘지회가 2020년 ‘디지털 콘텐츠 창작노동자들의 노동실태와 보호방안’에 대해 설문조사(응답자 285명)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6명(66.6%)은 작품당 연재 계약을 맺고 작업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어 한시적 계약(15%), 개인사업자 작업(7%) 등이었다. 근로계약을 맺는 경우는 5.9%에 그쳤다.

이들은 여성혐오적이거나 성차별적인 사이버불링(사이버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디지털 콘텐츠 창작 노동자 절반 이상(54.8%)이 이같은 답변을 했고 일러스트 작가의 45.2%가 이런 경험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작가의 경력이 ‘1년 미만’일 때 경험한 비율은 26.1%였는데 활동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험 비율이 높아졌다. 문제 행위에 대해 적절한 개입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유리 디콘지회 조직국장은 “디지털 창작 노동자들은 프리랜서로, 회사가 언제든지 쉽게 해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며 “국회나 정부 어디에서도 제동을 걸지 않고 회사들도 ‘유저들의 당연한 권리’라며 방치하면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 유선희 기자 y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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