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 노동자의 유가족들은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고, 애도할 시간도 없이 산재의 증거를 모으기 위해 뛰어다녀야 한다. 때론 회사를 상대로 씨름을 벌이기도 한다. 유가족들은 이 과정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헤집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과로사·극단적 선택 등의 경우 사망과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기도 어렵다. ‘산 넘어 산’인 승인 과정에 신청부터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 경향신문은 한국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산재 유가족 3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돈 위한 것 아니냐는 주변 시선 우려···오빠 이름만 들어도 힘든데 산재를 준비할 엄두 안 나”
김설씨(31)의 오빠는 중견기업에서 3D 도면 만드는 일을 하다가 2019년 3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1월부터 약 2달간 설 연휴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출근했다고 한다. 김씨는 “오빠가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 동료들도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측 임원이 김씨를 찾아왔다. 김씨는 회사가 책임을 인정하기를 기대했지만 회사는 ‘고인이 착하고 여린 분이었다’며 얼버무렸다. 김씨는 “마치 다른 사람도 다 똑같이 힘든데 오빠가 나약해서 죽었다는 말로 들렸다”고 했다.
김씨의 가족들은 산재 신청을 만류했다. 김씨의 부모님은 ‘산재 신청이 돈을 위한 것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을 걱정했다고 한다. 김씨가 노동단체 한 곳의 문의했지만 ‘고인의 유서에 업무 관련 내용이 없으면 산재 승인이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김씨는 “여러 기관에 상담을 받아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고 했다.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 지 몰랐던 김씨는 결국 산재 신청을 포기했다. 그는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며 “오빠의 죽음에 대해 말을 하면 울음부터 나는 상황에서 자료를 수집할 엄두가 안 났다”고 했다.
오빠의 죽음 이후 4년이 흐른 올해 초, 김씨는 다시 한번 산재 신청에 나섰다. 오빠의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출퇴근 기록, 카드사용 내역 같은 증거기록이 유실된 상태였다. 김씨는 “그때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거나, 기관 등의 선제적 도움이 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얻었을 것 같다”며 “평생 마음의 응어리를 안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업무상 극단선택’ 전문의 소견 받아들이지 않은 법원, 9년 지났지만 억울함 여전”
죽음에 대한 기록이 산재 승인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채영씨(가명·53)는 2015년 4월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대학 교직원으로 근무하며 약 3년간 광주-순천-여수-순천-서울로 교대 발령을 받았다. 서울로 발령받아 상경하는 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씨는 “‘왜 죽었을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빚도 없고, 아이들도 잘 커나가는 평안한 가정이었다”고 했다.
마음을 추스르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회사의 잦은 교대 발령이 죽음에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씨는 ‘산재 신청을 해볼 수 있겠다’는 노무사의 말을 따랐다. 세곳의 정신과 의사로부터 ‘업무상 정신적 불안에 의한 극단 선택’이라는 내용의 심리부검 소견서를 받았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업무 관련성이 현저하다고 볼 수 없다”며 남편의 산재를 불승인했다. 이씨는 2심을 이어가지 않았다. 또 기약없이 남편의 죽음에 메여 있을 수는 없었다.
산재 불승인 이후 이씨의 마음은 억눌려 있다. 사회복지 활동가로 일하는 이씨는 “이제 9년이 지나 잘 지낸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끔 ‘나는 남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나는 국가로부터 이해받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아이들도 아빠를 잃고 힘들어하는 과정을 거쳤다. 인생 전체가 산재에 얽혀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씨를 도와줄 제도는 미비했다. 이씨는 “산재 유가족이 되면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을 줄 알았다”며 “다른 유가족은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정보도 없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심 판결 후 1년 뒤 근로복지공단은 남편의 심리부검 비용 50만 원에 대한 청구서를 보냈다. 사체 검안서와 함께 온 공문을 보고 이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절차라지만 유가족에 대한 예의라는 게 있지 않나. 사체 검안서와 같이 비용을 청구하는 건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불확실성’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생각지 못한 자료에서 산재 승인 실마리”
불확실성 속에서 승인을 기다리는 유가족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소극적인 회사의 태도도 이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때때로 뜻하지 않은 곳에서 증거가 발견되기도 한다. 채유경씨(33)의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2015년 김치 공장으로 이직했다. 공장 관리직 업무를 맡아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9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출근이 아닌 날에도 늘 업무에 치였다고 한다.
2017년 8월 채씨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쓰러져 사망했다. 부검 결과는 사인미상이었다. 산재 상담를 한 노무사는 “심혈관질환이나 뇌질환의 경우 승인이 좀 더 수월하지만 사인 미상인 경우에는 쉽지 않다”고 했다.
채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 동료들은 만나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지 물었다. 아버지가 당초 맡은 업무 외에 인사관리와 식품인증 업무까지 해왔음을 알게 됐다. 출퇴근기록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자료가 없다’고 했다. 윤씨는 “회사는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했지만 나서서 도와주진 않았다. 무작정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망설여졌다”고 했다.
회사로부터 받은 아버지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실마리가 됐다. 출퇴근하며 찍은 하이패스 결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채씨는 이 기록을 토대로 아버지가 하루에 몇 시간씩 초과근무를 했는지 그래프 자료를 만들어 법원에 제출했다. 2018년 5월 법원은 산재를 승인했다.
채씨는 “카드 사용내역은 간접 증거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확신보다는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며 “불확실성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지치고 외로운 길이라는 걸 알지만 다른 유가족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