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위기론’은 유엔의 78년 역사와 궤를 같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기구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버젓이 유엔 헌장에 정면 위배되는 침략 행위를 저지르는데도 안보리는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했다. 북·러가 ‘전략적 군사동맹’으로 나아가기로 약속한 정상회담 결과는 안보리의 한계를 다시금 드러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한반도 관련 어떤 국제적 합의도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안보리 결의는 북한과의 무기 거래와 북한에 대한 위성이나 미사일 관련 기술 전수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러시아가 2006~2017년 10차례의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표결에서 모두 찬성하고도 “제재는 우리가 아닌 안보리가 선언했다”(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고 하는 건 궤변에 불과하다.
이란제 드론으로 우크라이나를 무차별 공격했던 러시아군은 북한산 탄약·포탄으로 무장할 준비를 마쳤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면 러시아는 물론 북한을 제지하는 데 국제사회가 총력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19일(현지시간) 개막한 올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담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논란을 빚었던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그런데 북·러 밀착 속에 안보리 차원의 북한 문제 대응은 더욱 곤경에 빠지게 됐다. 그동안에도 안보리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연쇄 도발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인해 번번이 결과물 도출에 실패했다. 북한이 10월로 예고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는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미국 등은 공식 회의를 소집할 것이고, 러시아의 대북 군사 기술 이전 여부가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북한이 ‘공모’해 대북제재를 무시하는 상황에서 결국 안보리 무용론만 재차 부각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이 같은 분위기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임기 동안에도 쉽게 반전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비상임이사국 진출 확정 당시 “북핵 위협 대응에 적극 기여” “(2024년 안보리 이사국으로 함께 활동하는) 한·미·일 3국 간 협력 확대”를 포부로 내세웠다. 미국과 중·러 간 대결 국면으로 안보리가 수시로 파행을 빚을 것이 자명한 만큼 한·미·일을 주축으로 한 대북 공조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래도 윤석열 정부가 안보리에서까지 ‘삼각 공조 강화’만 붙들고 있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안보리가 아무리 유명무실해졌다 해도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를 사명으로 삼아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유엔 내 유일 기관으로서 아직은 존속하고 있다. 안보리에서마저 한반도 관련 논의나 대응이 ‘신냉전’ 질서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중·러의 안보리 무력화 시도를 비판하면서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이들과 협력할 공간은 남겨둬야 한다. 가뜩이나 진영 대결이 첨예해지는데 한국이 앞장서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고착화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