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육군사관학교 앞을 지나다 놀라운 조형물 하나를 보았다. 거대한 황금색의 신라 화랑 동상이었다. 신라 화랑을 계승한다는 걸 내세우기에 육사가 있는 곳을 화랑대라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문 앞에 이렇게 거대한 동상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육사는 정문 이름도 화랑문이요, 연병장도 화랑연병장이며, 기숙사는 화랑관, 복지시설도 화랑회관이었다. 동상만 해도 정문 앞만이 아니라, 도서관 앞에도, 연병장 앞에도 있다. 심지어 1년에 한 번 여는 문예전의 이름도 화랑문예전이다.
그러나 과연 신라 화랑이 우리 육사가 계승한다고 이렇게나 내세울 만한 존재일까? 이들은 같은 민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인 전쟁광 집단이 아닌가? 대가야 전투에서 돌격대를 자처한 사다함이나 백제의 계백을 질리게 한 관창 같은 화랑은 일제 가미카제의 시원은 아닐까? 더구나 사다함은 그 사상도 몹시 의심스럽다. 임금이 준 노비를 풀어준 것을 보면, 지나친 평등의식을 지닌 인물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주 때 이른 공산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15, 16세의 소년병 군대를 조직하고 이들을 주력 부대로 삼은 신라 정부의 행태는 심각한 인권유린범죄로 유엔 안보리에 고발할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 읽고 피식피식 웃은 분이라면, 정상적 유머 감각을 지닌 분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며 진지하게 반박을 하려고 했다면, 평소에 “농담을 다큐멘터리로 받지 마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지는 않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 웃자고 한 소리다.
그런데 이게 왜 웃길까? 이건 한 번 진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단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놓고 같은 민족을 운운하는 게 말이 안 된다. 그 시대 사람들은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라 통일 후(‘통일’이라는 말도 논쟁거리지만) 500년이 지난 고려 중기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 부흥 운동이 있었으니, 신라 화랑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를 놓고 같은 민족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사다함이나 관창의 돌격대적 성격을 가미카제에 연결하는 건 더 말도 안 된다. 그사이 시간이 1500년은 떨어져 있고, 나라도 다르며, 수단도, 맥락도 다 다르다. 돌격대가 신라 화랑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영향 관계를 엮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공산주의가 없던 시대 사람을 공산주의자라 할 수 없으며, 조선시대까지도 15세면 어른으로 취급해 군대에 편제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이 얘기는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과거를 재단함으로써 웃겨보자는 것으로, 역사학자들이 좀 좋아하는 유형의 유머다. 역사학자에게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바로 “당대의 맥락을 무시하고 현재적 관점이나 기준에 따라 과거의 사람들을 제멋대로 재단해선 안 된다”는 것. 여기에선 이것을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4조라 하겠다.
꼭 역사학자가 아니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법을 조금만 공부했다면 이 정도는 상식이다. 그러면 이런 얘기를 시시덕거리면서 유머로 소비할 수 있을 텐데, 요새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런 기초 상식도 없는 사람들이 무식한 소리를 뻔뻔히 해대는 바람에 뭔 농담을 할 수가 없다. 시험만 좀 보고 공부는 안 한 사람들이라 그런가, 잿밥에 눈이 멀어서 그런가 모를 일이다.
여하간 육사에서는 자신들의 전신이 1946년 국방경비대사관학교라고 한다던데, 그렇다면 신라 화랑을 계승했을 리는 더욱 만무하니 그 동상도 치우고 건물 이름도 싹 다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화랑의 계승을 전면에 내세운 건 이승만 정권 때 일이지만, 지금 이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이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맘에 드는 것만 골라 전시하는 걸 역사라고 착각하는데, 뭐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