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찬의 우회도로] 일론 머스크를 이해하기 위하여](https://img.khan.co.kr/news/2023/09/20/l_2023092101000782600070203.jpg)
그의 기행(奇行)은 차고 넘친다. ‘모성 충동’이 강한 비혼의 여성 임원에게 자신의 정자를 기증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더 많은 아이를 가져야 하기에, 자신의 정자를 활용하라는 이유였다. 이 여성 임원이 임신 말기 입원했던 병원에는 그의 아이를 품은 또 다른 여성이 머물렀다. 그와 아내가 시험관으로 수정한 여자아이를 가진 대리모였다. 비디오 스트리밍 팟캐스트에 출연해 진행자가 권하는 대마초를 피운 다음날 그의 회사 주가는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다. 동굴에 갇힌 태국 소년들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준 탐험가를 두고는 별다른 증거 없이 ‘소아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몇몇 일들은 ‘세계 최고 부자의 기행’ 정도로 간주하기 어렵다. ‘언론 자유 수호’라는 명목으로 트위터를 인수한 뒤 혐오표현, 인종차별 등을 이유로 계정 정지된 유명 사용자들을 복귀시켰으나, 정작 자신을 비판한 기자들의 계정은 정지시켰다. 밤이든 주말이든 휴가기간이든 원하면 언제나 직원들을 호출해 일을 시킨다. 응하지 않으면 해고다.
일론 머스크를 비판적으로 보기 위해 <일론 머스크>(사진)를 읽기 시작했다. 평전 <스티브 잡스> 집필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의 신작이다. 전 세계 동시 발간을 앞두고 서구 언론에선 책의 주요하고 자극적인 내용들이 수시로 보도됐다. 위에 언급한 뉴럴링크 임원 시본 질리스에게 정자를 기증한 일, 스타링크 위성 통신망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우크라이나 드론 잠수함의 러시아 해군 함대 기습을 막은 일 등이다.
아이작슨은 집필을 위해 2년 동안 수시로 머스크를 인터뷰했다. 머스크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직장 동료, 업계 거물 제프 베이조스·빌 게이츠, 전 연인 앰버 허드·탈룰라 라일리 등 130여명의 말이 담겼다. ‘머스크를 비판적으로 보겠다’는 애초 의도는 책을 읽을수록 조금씩 누그러졌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책에는 머스크를 적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담겼지만, 700쪽이 넘는 책의 중심인물은 머스크다. 단편적으로 보도된 온갖 기행과 잘못 이면에 있는 머스크의 생각과 입장들을 조금은 더 깊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가 ‘차가운 광인’이라면 일론 머스크는 ‘뜨거운 광인’이다. 머스크가 여느 기업인들과 가장 다른 점은 그가 기업의 본질인 이윤 추구가 아닌, ‘사명’을 중시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는 지구 환경과 문명이 언젠가 몰락할 수 있기에 인류가 다행성에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성 탐사를 위한 우주 기업 스페이스X를 세운 이유다. 테슬라를 설립한 이유도 전기차가 이산화탄소로부터 지구 환경을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테슬라를 상장시킨 날 머스크는 “엿 먹어라 석유!”라고 외쳤다. 트위터는 강력해진 각성문화(woke culture)와 정치적 올바름 운동으로 위축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인수했다.
머스크는 정치인이나 활동가가 아니다. 이 같은 사명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경제적 이윤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생산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쓴다. ‘거추장스러운’ 안전 절차를 생략하거나 머스크 본인이 그렇게 하듯 직원들도 밤낮없이 일하도록 한다. ‘화성 식민지 개척’이라는 다소 허황한 목표를 위해 설립된 스페이스X는 저궤도 통신위성 사업 스타링크로 큰돈을 번다. “원대한 사명과 실용적인 사업 계획의 결합”이 머스크 사업 방식의 핵심이다.
강철 같은 의지, 무지막지한 추진력, 의외의 유연성, 좌고우면하지 않는 방향성, 무엇보다 ‘리스크 중독’이라 표현될 만큼 위험을 회피하지 않는 모험정신은 훌륭한 기업인뿐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리더가 갖추면 좋을 덕목이다. 고속 발전 단계를 거쳐 안정기, 다른 말로 하면 정체기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선 희귀해진 덕목이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머스크가 ‘혁신적인 기업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걱정이 생긴다. 전기차 사업 유치와 우주 개발 기술을 원하는 주요국 정상들이 앞다퉈 머스크와 만나고 있다. 개인의 결정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바꾸거나, 트위터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테슬라나 스페이스X 직원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스크에게 그러한 권한을 위임한 적이 없다. 특정인의 확고한 신념, 과감한 결단에 운명을 맡기기에는 한국, 그리고 세계의 형국이 너무 미묘하고 복잡하다.

백승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