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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대신 모험

요즘은 여행 코스를 짤 때 맛집 위주의 동선을 의식적으로 피한다. 식도락 여행은 계획이 쉽고 대체로 높은 만족감을 주지만, 일정을 식사에 맞추다 보니 여행지를 즐길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느껴서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단조로움을 피해 여행 계획을 세운다 한들 그것이 여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식당과 카페가 빠진 계획엔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드라마 촬영지가 빼곡히 채워진다.

소셜미디어(SNS) 돋보기로 사람들의 사사로운 후기와 사진 명소까지 알뜰하게 훑으면 완성된 계획표에는 여행에서 반드시 의미를 남기고 말겠다는 나의 징그러운 열정만이 가득하다. 여행의 여유는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그 여유를 당겨올 줄 모르는 나는 늘 여행의 시작부터 피로를 느낀다.

경부선은 익숙한 노선이지만 기점과 종점만 왕복한 탓에 나에게 충청도는 여전히 미지의 거점으로 남아 있다. 연고가 없어 가보지 못했다는 핑계는 부끄럽지만, 어린 시절의 흔적이 없는 곳을 일부러 방문하는 것은 모험의 일종이니 둘러대기엔 저만한 것이 없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가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산의 질감이 달라진다. 여행을 ‘잘하는’ 사람들은 단번에 이 산이 문장대 코스가 아름다운 속리산이며 이제 경상도의 경계를 지나 충청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하겠지만, 충청도를 창밖으로 지나치며 본 것이 전부인 나는 그저 ‘언젠가의 충청도 여행’ 때 방문할 것이라 미루면서 그곳들을 모두 빈칸으로 두고 무심히 지나친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비로워지기에 이제 나에게 ‘충청도 여행’은 내 오랜 상상 속을 모험하는 일생일대의 과업이 돼 버렸다. 나는 언제 충청도에 갈 것인가? 아니, 나는 왜 충청도에 가야 하는가? 성심당의 튀김 ‘소보로’와 학화 할머니 호두과자를 먹기 위해서? 머드 축제나 음악 영화제 같은 낭만적인 명분을 위해서?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지? 내륙부터 해안까지 충청도는 너무나 넓고 볼 것도, 먹을 것도 많다.

행선지조차 정하지 못해 여행을 포기하려 할 때, 유튜브에서 우연히 청주동물원에 관한 다큐멘터리 <안녕, 바람>을 시청했다. 청주동물원은 지난 7월 김해 부경 동물원에서 앙상한 모습으로 발견돼 ‘갈비사자’로 불렸던 바람이가 구조 후 이관된 야생동물 보호시설로, 야생과 가까운 모습으로 조성된 전국에 몇 없는 서식지 외 보전기관이다. 동물원 곳곳에는 전국에서 구조된 동물들이 자유롭게 숨고, 뛰고, 낮잠을 자고 사파리 코스 대신 야생동물의학을 전공한 수의사와 노련한 사육사들이 상주하는 병원, 구조 후 그곳에 머물다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추모공간이 있다. 이곳 역시 동물원이기에 입장료를 내면 관객으로 입장할 수 있지만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트랙에서 망원경으로 관람해야 하는데 그마저 동물들의 활동 시간과 겹치지 않으면 산책만 하다 돌아가야 한다. 청주동물원은 동물을 전시 목적의 상품이 아닌 생명체로 인식하며 구조하고 돌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청주동물원의 동물들을 보고 난 후 나는 나의 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줄을 서서 먹는 고깃집을 찾고, ‘인생샷’을 찍고, 야영장에서 바비큐를 굽고, 동물원과 수족관을 관람하며 의미를 남기는 모든 행위들을. 물론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겠지만, 여행을 나의 경험을 쌓는 도전이라 여기며 행하는 일들은 필시 무언가를 남겨야만 한다는 강박을 동반하고 이는 ‘나’를 제외한 모든 환경에 유해할 뿐 아니라 나만의 온전한 여유 또한 제대로 찾을 수 없게 한다. 그래서 다음주에 떠날 나의 ‘제1회 충청도 여행’은 가을볕에 몸을 쬐고, 이제 막 차가워지는 밤바람을 맞고, 정보 없이 방문한 식당에서 밥 한 그릇을 비우는 것 정도를 계획하고 있다. 나의 첫번째 충청도 모험을 위한 준비로 더할 나위 없다.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 저자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 저자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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