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지난6월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 인도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의 1박 2일 문화제 참가자들을 강제 해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행 집시법의 제10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시간)는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현재 ‘실효(효력상실)’된 상태다.
헌재는 2009년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0조와 이를 위반했을 경우 벌칙을 규정한 23조1호에 대해 재판관 5(위헌) 대 2(헌법불합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1년간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야간 옥외집회 조항은 효력을 상실했다.
헌재는 2014년 집시법 10조의 야간 ‘시위’ 금지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해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의 시위’에 적용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한정 위헌)고 결정했다. 옥외집회와 달리 시위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보면서도, 이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과잉이므로 자정까지는 야간집회를 허용하라는 취지였다.
경찰은 21일 ‘집회·시위 문화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헌재의 입장은 집회·시위 금지 시간대가 광범위하고 가변적이라 과잉금지 원칙 위반이라는 것이지, 심야시간 집시 금지 필요성은 일관되게 인정하고 있다”며 집시법 제10조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면 헌법학자들과 시민사회는 경찰이 발표한대로 심야 집회·시위를 원천 금지한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현행법보다 집회의 자유가 더 후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도로와 인도 모습. 이준헌 기자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4년 야간 시위에 대한 헌재 결정은 ‘심야부터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 무차별적으로 금지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며 “개별적·구체적 사정에 따라 규율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모든 집회·시위를 금지한다고 하면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헌재 결정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며 “집시법과 관련해서는 헌법 21조에 따르는 허가제 문제를 먼저 보고, 헌법 제37조2항에 따르는 과잉침해 금지 원칙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심야시간대를 근거로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위헌일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만 야기한다”면서 “실질적으로 심야시간에 집회·시위를 하는 경우가 많지도 않은데, 합리적 이유 없이 법을 개정하겠다는 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냉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는 “헌재 판결부터 시민사회의 일관된 입장은 심야시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일률적 금지·제한하는 건 허가제라는 것”이라며 “경찰은 야간 집회에서의 폭력 발생 등 유의미한 사례에 대한 통계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과 참석하지 않은 시민들을 갈라쳐 집회는 불온·불법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취지 아닌가 의심된다”고 했다.
경찰이 집시법 제12조(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에 ‘출퇴근 시간대 등 개최 시간, 행진 경로, 차로 이용 여부, 위험 가능성 등’ 집회·시위 제한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는 법원의 판단 폭을 제약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법에 집시 제한 요건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조건을 추가할수록 법률에 근거해 판단하는 법원의 판단 범위가 좁아질 우려가 있다”며 “법률과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법부의 판단 근거 자체를 좁히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국민 참여 토론’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6월13일부터 3주간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대해 의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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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대통령실 국민 참여 토론’ 온라인 투표 결과를 집시법 개정을 추진하는 근거로 들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브리핑에서 “최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우리 사회의 집회·시위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고 했다. 지난 6월13일부터 7월3일까지 3주간 대통령실 국민신문고 홈페이지를 통해 의견을 받은 결과로, 총 18만2704표 중 71%가 ‘추천’을 눌렀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이에 대해 한상희 교수는 “대통령실 온라인 투표는 국민여론이라 할 수도 없고, 본질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는 정치적·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라는 점에서 다수가 원한다고 해서 퇴행시킬 수 없는 권리”라며 “이것이 우리 헌재가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가장 핵심적 내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