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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카스 화약고’ 충돌 멎었지만…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평화 올까

20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와의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있는 아르메니아군의 진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와의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있는 아르메니아군의 진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유혈 충돌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그 여파는 한동안 캅카스 일대를 흔들 예정이다. 양측과 러시아·튀르키예 등 주변 강대국이 향후 협상에서 내릴 선택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민들의 운명이 달려 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 정부와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은 이날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단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아제르바이잔이 ‘대테러 작전’이란 명분 하에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군사 작전을 개시한 지 하루 만이다. 양측은 아제르바이잔 예블라흐에서 후속 협상을 벌인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번 협상을 아르메니아와의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던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확실하게 재통합하는 계기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은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인정되지만, 아르메니아계 주민이 약 80%(약 12만명) 거주하고 있다. 양국이 이곳을 둘러싸고 두차례 전쟁을 벌여 ‘캅카스의 화약고’로 꼽힌다.

일함 알리에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승리를 자축하며 “영토에 대한 주권을 되찾은 우리는 이제 통합을 원한다”고 선언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계 자치 세력이 군사 장비와 조직, 시설 등을 모두 포기하면 주민들의 평화를 보장하겠다는 제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주민 자치권을 어디까지 보장할지, 통합 수준은 어느 정도로 할지를 두고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자치군의 무장 해제와 철군 조건이 아제르바이잔에 이 지역 지배권을 넘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반발이 일고 있다. 2020년에 이어 이번에도 아르메니아가 패배했다며 좌절감이 터져나온 것이다.

휴전 이후 아르메니아에서는 수천명이 니콜 파시냔 총리를 규탄하며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 남성(32)은 “30년 넘게 싸워왔는데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전쟁에서 패한 지도자는 떠나는 게 낫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카라바흐에서 태어난 한 대학생(21)은 “왜 아르메니아가 자신의 일부를 다른 나라에 줘야 하느냐. 이번에 잃는 건 카라바흐지만 그 다음은 아르메니아”라고 말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한 가운데 19일(현지시간) 스테파나케르트에서 주민들이 대피소에 피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한 가운데 19일(현지시간) 스테파나케르트에서 주민들이 대피소에 피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르메니아인들은 아제르바이잔이 ‘인종 청소’에 나설까 우려한다.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를 연결하는 카친 회랑을 봉쇄하면서 이미 이 지역 주민들은 수개월 동안 식량과 의약품 부족에 시달렸다.

이번 유혈 충돌 이후 아르메니아 주민 수천명은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운영하는 캠프와 공항에 몰려들었다. 부모와 친척들이 대피에 나선 한 청년(23)은 “국제사회가 아제르바이잔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량 학살이 일어날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피터 스타노 유럽연합(EU) 대변인은 “현재의 군사 작전이 이 지역에서 아르메니아 주민을 쫓아내기 위한 사전작업이 돼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이어질 협상에서는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 튀르키예 등의 입장이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각국 또한 협상 결과에 따라 캅카스에서의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중재자 역할로 존재감을 굳혀온 러시아로서는 분쟁이 종식되면 오히려 영향력 감소가 가속화할 수 있다고 NYT는 짚었다.

같은 튀르크계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을 경제·군사적으로 지원해 온 튀르키예는 1990년대와 2020년 전쟁에 이어 이번에도 아제르바이잔의 편을 들고 나선 상태다. NYT는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아제르바이잔 통치로 들어가면 수세기 동안 러시아, 튀르키예, 서방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교차해 온 캅카스 지역의 세력 역학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번 위기 과정에서 이미 흔들리고 있는 아르메니아와 러시아의 관계 악화가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고 CNN은 분석했다. 이달 초 아르메니아는 우크라이나에 첫 인도적 지원을 보냈고, 파시냔 총리의 아내인 안나 하코뱐 여사는 키이우를 공식 방문했다. 파시냔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서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동맹국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아르메니아가 미군과 합동군사훈련을 하고 우크라이나에 지원까지 보내자 관계는 한층 더 멀어졌다.

반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비롯한 러시아의 유력 정치인들은 아르메니아의 정치력과 군사력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방어할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조롱해오곤 했다.

이번에도 파시냔 총리는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에 약속한 안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그는 아제르바이잔의 군사 계획을 두고 “러시아로부터 그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받지 못해 이상하고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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