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의 현실 속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는 정부, 지자체 등에 ‘기후정의’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려 합니다.”
오는 23일 전국에서 열리는 ‘923기후정의행진’에 나서는 이들이 공통으로 밝힌 참가 이유다. 기후재난 피해자, 탈석탄 활동가, 철도 노동자,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이자 피해자, 환경단체 활동가 등 저마다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을 표어로 기후정의행진에 나서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기후정의행진은 각계각층이 모여 ‘기후 정의’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다. 지난해 9월24일에는 서울 시청역 일대를 비롯해 전국에서 3만5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경향신문은 21일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923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와 함께 ‘기후위기의 최일선에서 싸우는 당사자들’이라는 주제로 집담회를 열었다. 송상호 오송참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 공동대표, 시봉(활동가명·본명 김시현)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이근조 철도노조 정책기획실장, 박은영 보철거를위한금강영산강시민행동 집행위원장 등이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황덕희 월성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따로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기후재난 피해자를 대표해 참석한 송상호 대표는 기후정의행진 참여 이유로 “국가에 의해 소외되고,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송참사에서 나타나듯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너무 멀리 있고, 기후재난을 극복할 책임은 개개인에게 지워져 있다”며 “‘참사의 원인을 밝혀달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기후재난 대책을 수립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권력의 벽은 너무 높고,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 작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이번 기후정의행진을 통해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우리의 요구들도 서로 연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석탄화력발전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봉 활동가 역시 행진 참가자들과의 ‘연대’를 꼽았다. 그는 “기후정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 모두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지구라는 터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행진에 참가할 것”이라며 “함께 정부에 기후정의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봉 활동가는 지난 12일 강원 삼척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직접행동에 참여했다. 그는 “직접행동 참여를 결정하고, 삼척에 갈 때도 함께 저항하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이번 행진에서)정부에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들으라고 외칠 것”이라고 말했다.
월성원전 주변 주민으로 갑상선암 피해자이기도 한 황분희 월성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핵발전은 눈앞에 닥친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황 부위원장은 “한수원은 핵발전을 기후위기 시대에 적합한 발전방식이라고 말하지만 대량의 온수를 바다에 버려 해수 온도를 상승시키고, 인근 지역에선 어업도 못 하게 만드는 발전소를 대안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후정의행진에서)일본 후쿠시마원전 핵오염수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뿐 아니라 국내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이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지를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집담회 참가자들은 이번 기후정의행진이 수만명이 일시에 모여 한목소리를 내고, 끝나는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참가자들 서로의 힘을 확인하고, 새로운 활동을 벌이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은영 집행위원장은 “이번에는 서울이 아닌 대전에서 벌이는 지역 행진에 참가할 계획”이라며 “서울의 큰 행진도 중요하지만 이번 행진을 통해 지역에서도 기후정의운동의 성과를 거두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행진을 통해 지역과 지역이 연결되고, 지금의 기후운동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최근 금강 공주보 담수 관련 농성을 벌였고 지난 5일에는 물관리기본계획 공청회에서 항의하다 연행됐다.
철도노동조합의 이근조 정책기획실장은 노조원들과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철도가 공공철도로서, 녹색교통수단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더 명확히 해야한다”며 “조합원들이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알고는 있지만 철도노조의 활동과 연결해서 인식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후정의행진을 통해 조합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과 동시에 더 많은 시민이 고속열차를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KTX와 SRT를 합치면 하루 3만석의 좌석을 늘릴 수 있는데 이는 대중교통을 늘림으로써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집담회 참가자들은 또 이번 행진이 일상화된 기후재난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는 동시에 정부가 지나치게 안이한 대처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리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송 대표는 “기후재난에 있어 정부의 대응이 거의 빵점에 가깝다는 사실은 이미 오송 참사에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며 “현재의 기득권 정치세력들이 전혀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또 그것에 저항하는 이들의 힘이 연결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 기후재난으로 죽지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2) 핵발전과 화석연료로부터 공공 재생에너지로,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하라
3) 철도민영화를 중단하고 공공교통 확충하여, 모두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4)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신공항건설과 국립공원 개발사업 중단하라
5) 대기업과 부유층 등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자료 :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