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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조무제, 그리고 이균용

입력 2023.09.21 20:30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1887~1964)은 법관의 표상으로 추앙받는다. 단지 ‘첫’ 대법원장이란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법률가로서, 나라의 큰어른으로서 값진 자취를 남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법률 초안 대부분이 가인의 손길을 거쳤고, 사법부 독립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그가 이뤄낸 성취 중 하나다. 후세가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법률가로서 업적과 능력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철저한 자기 절제와 함께 청렴한 삶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존경받았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인 김병로>(2017)에서 해방 후 미 군정청 경무부장이던 조병옥(1894~1960)과의 일화를 소개하며 가인이 ‘공직자 부패와 권력남용이 만연했던 시절 청렴강직의 표상’이었다고 평가했다.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늘 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였고, 청탁을 배격했다. 판사를 비롯해 사법부에 몸담은 사람에게는 스스로 몸가짐을 깨끗이 할 것을 당부했다.

“해방 정국에서 위세를 지녔다고 할 만한 그들은 큰 집은커녕 작은 집 하나도 불하받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살던 집, 적산가옥을 적당히 차지하고, 군정청과 줄을 대기만 하면 자기 것이 되는 풍조에서 그들은 공직의 청렴성을 철저히 지켜갔고, 그 공직을 남용하여 재산불리기의 시도를 일체 하지 않았던 것이다.”(<가인 김병로>, 442쪽)

한 교수는 가인을 가리켜 “공직자로서 사적 이익을 탐한 적이 전혀 없기에 그에게는 선공후사(先公後私)보다도 지공무사(至公無私·지극히 공평해 사사로움이 없음)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했다.

조무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도 청빈한 법관의 사표(師表)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1993년 부산고법 부장판사 시절 공직자 재산공개 때 25평 아파트 한 채 등 6434만원을 신고해 재산공개 대상 법관 103명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2004년 대법관 퇴임 때도 재산은 아파트 한 채를 포함해 2억여원이 전부였다.

판사 시절 재판수당을 털어 직원 회식비로 내놓는가 하면 창원지법원장 퇴임 때엔 직원들이 모아준 전별금 500만원을 받지 않고 책을 사서 법원 도서관에 기증하도록 했다. 법복을 벗은 뒤에는 거액의 보수가 보장되는 로펌 대신 모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길을 택했다. 교수가 되어서도 사택과 연구실, 강의실만을 오갔고 점심시간이 되면 걸어서 사택에 가 식사를 한 뒤 다시 학교로 나왔다고 한다.

소송에서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할 의무를 지닌다.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요구받는다. 법관윤리강령 제3조는 ‘법관은 공평무사하고 청렴하여야 하며,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남을 심판하는 자리인 만큼 스스로 삼가라는 얘기일 터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지난 20일 끝났다. 후보자 지명 이후 재산과 세금, 자녀 문제를 둘러싼 갖가지 잡음과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청문회에선 석연치 않은 해명이 이어졌다.

재산신고에서 고의 누락 의혹을 받는 비상장 주식 문제와 관련해 “신고 대상인 줄 몰랐다”고 했지만 그 주식을 받으면서 증여세를 내고 배당까지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선출직은 재산신고를 누락하면 당선무효형이고, 고위공직자들은 중징계를 받는다. 해외에 사는 딸에게 매년 약 1만달러씩 총 6800만원을 보냈지만 증여세를 납부한 적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비 명목으로 송금했다고 했는데 딸의 국내 계좌에 예금잔액은 늘어난 것을 보면 증여세를 회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본인은 “송구스럽다” “아무튼 죄송하다”고 했다.

판사로서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지도 않다. 이 후보자는 2017년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가 실시한 다면평가에서 전국 법원장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제 며칠 뒤면 국회에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상정된다. 지금까지 제기된 숱한 의혹만으로도 ‘과연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수장으로 적합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요즘 같은 세상에 가인이나 조무제 전 대법관같이 훌륭한 사람을 바라지는 않는다. 단표누항(簞瓢陋巷·선비의 청빈한 생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라의 녹을 먹는 백관유사(百官有司)라면 적어도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홍민 사회에디터

조홍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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