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보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내부 갈등 사태 향방을 관망하며, 민생·정책을 강조하는 로키(low-key) 행보를 취했다. 여당 일각에선 ‘이재명 없는 민주당’과 상대하게 되면 반사이익이 사라져 국민의힘에 진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2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이 지역 경영인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전날 이 대표 체포동의안 통과와 이후 민주당 내 갈등 상황과 관련해 “다른 당이 왈가왈부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김 대표는 “국회가 비정상을 마무리하고 정상화로 갈 수 있는 모멘템이 마련됐다”며 “민생을 먼저 챙기는 국회가 되도록 여당은 앞장서야 한다”고 밝혔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뒤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총사퇴하기로 한 것을 두고 “무거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입단속을 주문했다. 민주당 내홍에 섣불리 대응했다가 야권 지지층과 중도층의 반감을 키울 수 있어서다. 윤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 본회의 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앞으로 갈 길이 첩첩산중이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언행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지도부는 낮은 자세와 취약한 중도층·수도권·여성·2030 공략에 더 힘써야 한다는 점을 공유했다.
국민의힘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민주당이 당 대표 리스크가 사라지면 여당에 호재가 아닌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그간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주된 민주당 공격 소재로 활용했는데도 지지율에서 민주당에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당분간은 혼란을 겪겠지만, 내홍을 수습하고 혁신에 나서면 이에 대응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주당이 분당되더라도 이재명이 없는 민주당이나 신당의 개혁 드라이브에 맞설 마땅한 정책이나 전략이 전무한 지금 상태라면 (국민의힘의) 더 큰 패배가 예상된다”고 썼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어제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계기로 ‘윤석열 대 이재명’ 적대적 공생관계가 깨졌다”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입장에서 오히려 위기”라고 주장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총선 국면에서 민주당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남권 한 초선의원은 “우리는 (총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제 진짜 시작할 시점”이라며 “여당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우리의 능력과 정책을 어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는 26일로 잡힌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이 청구한 이 대표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정부·여당에 거센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것도 여당이 몸을 낮추고 있는 이유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 <여의도 재건축 조합>에 출연해 “(이 대표가) 만약 구속이 안 되면 그때는 역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정권의 위기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여당 내에선 영장 발부 전망이 우세하다.
여당 일각에선 민주당 갈등 사태가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예상과 달리 민주당에서 친이재명계가 오히려 득세하고 이 대표가 ‘옥중공천’을 불사하리란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명백한 결론을 두고 정치탄압, 책임론, 해당행위 운운하는 모습은 민주당이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당분간 민주당과 각을 세우기보다 민생 행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내부 갈등을 겪는 민주당과 차별성을 부각하는 전략이다. 김 대표는 이날 종일 지지층이 두터운 대구에 머물면서 경영인·수산업자 간담회, 서문시장 방문 등 일정을 소화했다. 김 대표는 9일 전인 지난 13일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을 위해 대구를 찾았다. 김 대표는 “명절을 앞두고 고향을 찾는 심정으로 왔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에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과 함께 ‘가맹사업 필수품목 제도 개선 민당정 협의회’를 개최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후 여야 행보에 대한 1차 평가는 다음달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나온다. 국민의힘 한 수도권 의원은 “총선은 원래 지지층 외에 중도층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 싸움”이라며 “(여야가 진로를 모색하는데) 추석 민심과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를 종합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