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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당신들이 필요하지 않다

입력 2023.09.25 20:35

800여명이 그 산골까지 왔다고요? 예. 저도 기적 같은 일에 놀랐습니다. 개인 차량만 300여대가 와서 산골마을 2차선 도로에 4㎞가량 늘어서 있었습니다. 대구지역에서 사회운동하는 벗들이 승합차 네 대를 가지고 와서 종일 셔틀 운행해주었습니다. 지난 9월2일.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후원 연대의 날이었습니다.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은 전북 남원의 귀정사 계곡가에 터를 잡고 그간 국가폭력과 자본폭력, 사회폭력의 피해자들과 그에 맞서 연대하고 저항하다 지치고 아픈 이들을 위한 무료연대쉼터로 조용히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매해 잠시 쉬는 것조차 죄스러워하는 100여분의 피해자, 활동가들이 내 집처럼 편히 쉬었다 갔습니다. 비판하기는 쉬운데 지키기는 힘든 게 동지라는 걸 뒤늦게 배운 이들이 함께 만들고 지켜온 곳. 누군가 힘들거나 아파 보일 때 쉼을 통해 자신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나와 우리를 진정으로 지키는 일이라는 오랜 반성이 깃들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당일 남원지역 사회운동가들과 ‘장수민중의집’ 등이 나서서 연잎밥 300인분과 김밥 100인분을 준비해주었습니다. 배식 15분 만에 동이 나 차량 두 대가 먼 남원 시내 여러 분식집의 김밥과 빵집의 빵을 털어 와서야 간신히 저녁밥공양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뒤풀이 음식은 그간 온갖 민주주의 투쟁 현장에 함께해온 우리밥연대 벗들이 정성스레 준비해주었습니다. 모든 이들의 헌신과 열정을 여기 모두 다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정태춘·박은옥 두 분이 나서주셔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노래 중간중간 덧붙여주시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시였습니다. 여전히 투병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하던 때 만든 연대의 노래를 불러줄 때는 현장에 와있던 김진숙님을 포함해 모두의 눈가가 젖기도 했습니다. 사회를 봐준 정혜윤 PD와 명인, 박성훈 가수의 말과 노래, 박남준 시인의 시, 모두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난 꿈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차별받지 않는 나라, 군대와 폭력이 없는 나라, 나의 오랜 고난이 기쁨이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김판수 선생님의 말씀이 모두 귀했습니다. “이곳이 빈 도화지 같은 곳이면 좋겠습니다. 수고한 분들이 편히 쉬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는 아름다운 곳이면 좋겠습니다”라는 신학철 선생님의 당부도 뇌리에 오래 남았습니다.

제발 이 시대의 위정자들과 각종 폭력을 일삼는 정치권력 모리배들이 우릴 위해 무엇을 한다는 더럽고 어지러운 일들을 그만 멈추고 이 세상이 그냥 ‘빈 도화지’ 같은 곳이게만 해주어도 좋겠다는 생각.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과 예의를 갖추고 있는 이 시대의 주권자들이, 시민들이, 힘써 일하는 노동자 민중들이,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며 일하는 여러 소수자 집단들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하나씩 그려나가 볼 수 있는 ‘빈 도화지’ 같은 세상. 미래세대 청소년들이 아직 때 묻지 않은 인간의 고귀한 심성을 자유롭게 표현해볼 수 있는 ‘빈 도화지’ 같은 세상이면 좋겠다는 꿈이 돋아났습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들 수 있도록, 우리의 ‘오랜 고난이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다시 힘써야겠다는 선한 기운을 채우는 고마운 날이었습니다.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다시 제왕이 되어 ‘공산전체주의 세력’ 운운하며 사회분열과 갈등을 앞장서 조장하는 대통령, 위험한 한·미·일 군사자본동맹을 좇으며 핵오염수 방류도 괜찮다는 정부, 독립투사들의 동상을 철거하는 국방부, 언론 사전검열을 부활시키겠다는 방송통신위원회, 촛불항쟁을 가능케 했던 야간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박탈하겠다는 경찰, 권력투쟁의 도구와 화신이 된 검찰, 이명박 시기 블랙리스트 실행의 공모자와 다름없는 유인촌을 다시 장관으로 세우는 문화체육관광부, ‘자본옹호부’가 돼 2200만 노동자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이 될 노조법 2, 3조 개정에 반대하는 노동부, 4대강을 다시 막고 원전을 세우겠다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등. 우리 모두가 어렵사리 정화해온 세상의 도화지를 짓밟는 이들이 여전히 정치권력이란 이름으로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불의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어떤 공포와 절망, 어떤 독점과 폭력의 세력도 좀 더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인류의 오랜 꿈을 막아오지는 못했습니다. 권력과 자본에 기생해 만인의 불평등과 아픔과 불안을 조장하며 호의호식하고자 하는 그들 소수는 다시 최소한의 양심과 정의, 세상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손에 의해 솎아내질 것입니다. 그게 우리도 다 인지할 수 없는 이 존엄한 세상의 변하지 않는 성문법일 것입니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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