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도 기준도 없는 ‘여성혐오 범죄’…“국제표준 도입이 예방 첫걸음”


완독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여성노동연대회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2022년 9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 사건과 관련해 페미사이드(여성살해) 추방을 요구하는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통계도 기준도 없는 ‘여성혐오 범죄’…“국제표준 도입이 예방 첫걸음”

입력 2023.10.04 15:02

UN 승인한 ‘페미사이드 통계’ 국제표준

친밀한 관계·성차별적 동기 등 기준 제시

아직 통계 없는 한국…‘도입 필요’ 주장

2016년 5월17일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가 여성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범행을 저질렀고 “여성들에게 피해를 봐서 범행했다”고 진술했는데도, 수사기관은 “여성혐오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여성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수사기관의 성평등 인식이 낮다며 반발했다. 이후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여성혐오 범죄’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반복됐다.

한국도 ‘페미사이드(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것)’의 정의에 관한 국제 표준을 활용하는 논의가 시작됐다. 어떤 사건이 페미사이드인지 명확히 판별하고 통계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노동연대회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2022년 9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 사건과 관련해 페미사이드(여성살해) 추방을 요구하는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여성노동연대회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2022년 9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 사건과 관련해 페미사이드(여성살해) 추방을 요구하는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UN여성기구 성평등센터와 아태범죄통계협력센터는 서울 중구 웨스턴호텔에서 ‘페미사이드 근절을 위한 국제회의’를 열고 이 같은 논의를 진행했다고 26일 밝혔다. 회의는 25~27일 3일 동안 전 세계 정부·학계·시민단체 관계자들과 UN 산하기구 전문가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회의 참석자들은 지난해 제53차 UN통계위원회에서 국제 표준으로 최종 승인된 ‘페미사이드 통계 수집을 위한 국제통계 프레임워크(틀)’를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UN여성기구와 유엔마약범죄사무소는 페미사이드 범죄를 명확히 식별하고 국가마다 다른 판단기준을 통일시키기 위해 해당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지난해 두 기관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21년 여성 대상 살인사건 8만1100건 가운데 40%는 젠더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는지 식별할 맥락적 정보가 부족했다. 한국도 페미사이드 관련 통계가 없다.

UN여성기구는 “젠더적 요인을 식별하는 가해자와 피해자간 관계나 범행 동기와 같은 정보가 국가 데이터 시스템에 연계돼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국가별로 젠더적 요인을 식별하는 기준이 다양해 국제적으로 수치를 비교하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프레임워크는 페미사이드로 규정하는 3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의도적 살인’, ‘가족 구성원에 의한 살인(명예살인 등)’, ‘성차별적 동기가 나타나는 가해자에 의한 살인’이다. 프레임워크는 이 3가지 기준 중 1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페미사이드로 규정했다.

프레임워크는 마지막 기준인 ‘성차별적 동기’를 판단하는 8가지 세부 기준도 제시했다. ‘피해자가 과거 가해자에게 신체적, 성적, 정신적 폭력·괴롭힘을 당한 경우’ ‘피해자가 인신매매, 강제 노동, 노예 제도 등 불법 착취의 피해자인 경우’ ‘피해자가 납치됐거나 불법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경우’ ‘피해자가 성 산업에 종사하고 있던 경우’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이 살인 이전 또는 이후에 저질러진 경우’ ‘신체 절단이 동반된 경우’ ‘시신이 공공장소에 처리된 경우’ ‘가해자 측의 여성에 대한 특정한 편견 때문에 표적이 된 경우’다.

행사에 참석한 이형일 통계청장은 “국제적으로 활용 가능한 페미사이드 통계 개발은 전 사회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라며 “통계를 활용한 증거 기반 정책 환경을 조성하고,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멜리사 알바라도 UN여성기구 여성폭력근절 지역프로그램 전문가는 “페미사이드의 성차별적 동기와 원인을 구별해 낼 수 있도록 주요 특성을 확인하고 표준화된 정의를 확립해 나가는 일은 ‘근거 기반 예방 정책’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이정심 UN여성기구 성평등센터 소장은 “센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해당 프레임워크를 도입해서 페미사이드 수치를 집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 조해람 기자 lennon@khan.kr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