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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간 걸린 귀성길의 깨달음

입력 2023.10.04 20:30

추석 연휴가 길었다. 임시공휴일이 더해져 6일짜리였다. 인천공항 이용객 수는 7일 동안 120만명을 넘겼다. 하루 평균 17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이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0.78명보다 더 줄었다. EBS 다큐에 출연한 미국의 한 교수가 “한국은 완전히 망했어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인터넷에서 회자됐다.

결혼도 줄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7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혼인건수 역시 전년 같은 달에 견줘 5.3% 감소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는다. 고향에 가면, 잔소리밖에 들을 게 없다. 길어진 추석 연휴에 해외로 떠나는 이들도 늘었다. 이번 귀성길은 비교적 한산할 거라는 예상은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새벽 5시에 출발하면 충분히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고속도로에 올라가기도 전에 다른 사람도 다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동트기 전 도로에 차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끝없이 이어지는 차량 행렬에 초조감이 밀려왔다. 아내의 본가인 경북 포항까지 평소라면 3시간30분 정도면 넉넉하다. 하지만 올해 추석은 달랐다. 3시간이 넘도록 경기도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며 명절 귀성에 이런 정체는 처음이었다.

인공지능(AI)이 주목받는 시대지만 내비게이션조차 정답을 알려주지 못한다. 기존의 ‘학습’이 소용없을 정도로 의외의 데이터가 쏟아지고 변수가 늘었다. 가면 갈수록 차량이 늘어났다. 내비게이션 앱의 ‘새로고침’을 아무리 열심히 눌러도 난관을 뚫고 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은 습관처럼 몇가지 경로를 추천할 뿐이다. 숫자로 표시된 예상 도착 시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가면서 늘어날 게 뻔하다. 도로 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가족회의가 시작된다. 이번 귀성에는 조카 2명이 함께해 6명이다.

어차피 밀릴 것이니 최단거리인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택할 것인가, 멀리 돌더라도 중앙고속도로를 타야 할까. 역으로 허를 찔러 중부고속도로를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국도로 빠져서 ‘운’을 기대해볼 것인가. 그렇다면 휴게소가 드문 국도에서 아침과 점심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꽉 막힌 도로에서 경로 선택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뉴턴법칙하에서 한 번 가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의 불가역 법칙 속에서 ‘가보지 않은 길’과의 사후 비교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소용도 없다. ‘저리로 갔더라면’ 하는 후회는 다음의 올바른 선택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일단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족회의가 중요하다. 여러 가능성을 상정하고, 선택에 따른 장단점을 따져가면서 최악과 최선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6명의 논의 끝에 국도로 나가기로 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삭막한 중앙분리대와 반복되는 터널을 쳐다보느니, 막히더라도 꼬불꼬불한 시골길의 정취를 눈에 담는 게 낫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날씨도 마침 쾌청했고, 따가운 햇볕 속 바람도 선선했다. 몇몇 분교 옆을 지날 때, 아이들의 감탄사가 나왔다.

“우리가 다녔던 학교랑은 많이 달라.”

남쪽으로 가는 모든 길이 막혔다. 적어도 5시간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9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귀성길이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이 서로 학교 이야기를 나눴다. 잘생긴 ‘동훈이 오빠’, 운동 잘하는 ‘건민이 오빠’ 얘기에 웃음꽃이 넘쳤다. 엄마 아빠의 옛날 노래와 요즘 아이돌의 노래가 섞여 나오면서 공감의 폭도 넓어졌다. 평소보다 3배는 많은 물리적 시간이 걸렸지만 ‘체감 시간’은 훨씬 적었다.

9시간 귀성길에서 아내와 함께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의 미래를 떠올렸다. 우리 사회의 경로 선택은 올바른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을까. 교육과 노동과 연금은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처는 오히려 거꾸로 가는 듯하다.

내비게이션도 없는 미래를 향한 경로 선택에 있어 운전대를 잡은 이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꺾고 있는 중이다. 경제도 외교도 급변침이다. 국민과의 협의는커녕 제대로 된 설명도 없다. ‘이런 방향이 이래서 좋은 것’이라는 목표 제시 없이 ‘이게 왜 문제냐’는 식으로 몰고 갈 뿐이다.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에는 ‘가짜뉴스’라는 딱지를 붙여 무시한다.

운전면허는 교통규칙 준수를 전제로 한다. 난폭 운전은 차량을 망가뜨린다. 잘못 들어선 길에 대한 기회비용은 모두의 짐으로 돌아온다. 추석 귀성 9시간 동안 떠올린 물음이자, 깨달음이다.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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