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죽음을 맞게 될까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이나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으로 세상을 뜨면서 사망 전 1년 정도를 임종을 앞둔 환자로 지내게 됐고,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도 인공호흡기·혈액투석기 같은 의료기술로 상당 시간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듯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도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국민은 어떤 죽음을 원할까? 국민 10명 중 6명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임종을 맞기를 원하지만, 실제 사망자 10명 중 8명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사망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집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이 높아진 반면 우리나라는 거꾸로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임종 전에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기보다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고통 없이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호스피스 진료가 필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호스피스 진료가 필요한 임종 환자 5명 중 1명밖에 호스피스 진료를 받지 못한다. 영국·호주의 호스피스 이용률(80%)에 비해 턱없이 낮고, 미국과 대만의 이용률(40~6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호스피스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무의미한 검사와 치료를 받느라 시간과 돈을 허비한다. 임종 전 1년간 평균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병원비로 약 3000만원을 쓴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CT나 MRI 같은 검사(53%)를 받고, 일부는 중환자실에 입원(13%)하고, 항암치료(7%)를 받기도 하지만, 상태가 나빠져 응급실에 가는 경우(37%)가 적지 않다. 반면 호스피스 진료를 받은 5명 중 1명은 대부분 통증 조절을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더 많이 투여(76%)받고, CT나 MRI 같은 검사(3%)나 중환자실 입원 치료(0%)는 거의 받지 않는다. 환자 상태가 잘 관리되니 응급실을 방문하는 경우(7%)도 드물다.

왜 국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인 죽음을 맞고 있을까? 첫째, 정부가 호스피스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상 질환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호스피스 진료가 필요하다고 권고한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약 20만명에 달하는 데 반해 정부가 인정한 호스피스 대상 질환은 약 10만명에 불과하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을 호스피스 대상에 포함시켰지만, 이는 전체 사망자의 2%에 불과하다. 정부가 생색내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호스피스 진료가 필요한 모든 질환으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다고 큰돈 드는 것도 아니다. 호스피스 진료비와 무의미한 적극적 치료를 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비슷하다. 2015~2017년 사망 1개월 전 호스피스 진료를 받은 사람의 진료비는 470만원으로 적극적 치료를 받은 416만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둘째, 호스피스 진료를 하는 병·의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임종을 맞으려면 의사와 간호사가 집에 찾아와서 진통제도 주고, 복수도 제거해주는 ‘가정 호스피스’ 병·의원이 있어야 한다. 매년 호스피스 진료가 필요한 사망자가 약 20만명에 달하고 이 중 60%가 집에서 임종을 맞길 원하니 가정 호스피스가 필요한 사람은 약 12만명이나 된다.

하지만 전국에 가정 호스피스 기관은 38개에 불과하다. 정부가 가정 호스피스 사업을 시작한 지난 6년 동안 가정 호스피스 기관은 17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입원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기관도 부족하다. 입원환자에 대해 호스피스 진료를 하는 곳은 143개로 전체 병원과 요양병원 3400여개의 5%에 불과하다.

임종을 앞둔 모든 환자들이 원할 경우 호스피스 진료를 받도록 하려면 전국적으로 적어도 1000개의 가정 호스피스 병·의원을 지정해야 한다. 입원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를 대학병원에는 의무화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에는 호스피스 진료를 사실상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병원과 의사가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호스피스 진료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진료를 하는 병원 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호스피스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26%에 달했다. 호스피스를 운영하지 않는 병원에서 호스피스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담당 의사가 호스피스 진료에 대해 더 일찍,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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