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헹가우 “16세 가라완드 의식 불명”
지하철에서 부축받아 실려 나오는 영상 공개
이란 당국 “평소 저혈압…폭행 없었다” 부인
이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10대 여성이 도덕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주장이 3일(현지시간) 제기됐다. 지난해 9월16일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같은 이유로 구금됐다가 의문사한 지 1년만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인권단체는 진상 조사를 요구했고, 이란 당국은 피해자 부모를 앞세워 여론 통제에 나섰다.
📌[플랫]이란 ‘히잡 시위’ 1년… 잊히는 듯, 결코 멈추지 않은 투쟁의 목소리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쿠르드족 인권단체 헹가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지난 1일 16세 여성 아르미타 가라완드가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심한 구타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어 가라완드는 현재 파즈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이란 보안군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헹가우가 성명과 함께 공개한 폐쇄회로(CC)TV 영상엔 가라완드가 지하철에서 부축을 받아 승강장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담겼다. 영국 가디언은 “그 소녀는 분명히 의식을 잃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가디언은 “영상만으론 기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고, 소녀가 친구들에 의해 끌려가는 모습만 담겼다”며 “화질 또한 좋지 않아 어떤 종류의 머리 덮개를 쓰고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부연했다.
이란 당국은 반박에 나섰다. 이란 고위 관계자는 “신체적인 다툼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국영 언론들은 일제히 가라완드가 평소 저혈압을 앓고 있었고, 이날도 열차 안에서 기절해 머리를 다쳤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나아가 관영 통신사 파르스는 가라완드 부모를 인터뷰하기까지 했다. 가라완드의 아버지는 “영상을 모두 확인해본 결과 이번 사건은 단순 사고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우리 아이의 회복을 위해 많은 사람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디언은 “이란 당국은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가족들을 강제 인터뷰해왔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란 당국은 언론 통제에도 힘을 쏟고 있다. 헹가우는 개혁 성향 이란 신문인 ‘샤르그’의 기자가 가라완드 취재를 위해 병원 진입을 시도하다가 보안군에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가족과 지인의 면회도 전면 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이번 사건이 이란 전역을 뒤흔든 1년 전 아미니 의문사 상황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당시에도 이란 당국은 아미니가 신경 장애를 앓고 있었고, 경찰서 안에서 쓰러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며 “정확한 사인을 알고 싶다는 가족들의 요구도 모두 거부됐다”고 설명했다.
이란 당국은 아미니 죽음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경험한 뒤 강력한 억압 정책을 펼쳐왔다. 이란 의회는 지난달 히잡 착용 의무 규정을 위반하는 여성에게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히잡과 순결 법’을 통과시켰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단속 시스템도 구축했다.
📌[플랫]‘히잡 미착용시 징역 10년’…여성 억압하는 ‘히잡과 순결법’ 제정한 이란
이런 가운데 또다시 도덕경찰 폭행으로 10대 여성이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일각에선 ‘제2의 아미니’ 사태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역사는 반복된다” 등의 규탄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ABC뉴스도 “아미니가 사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이란 활동가들은 여전히 잔인한 정권에 맞서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 손우성 기자 applepie@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