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한국의 값싼 전기 요금이 사실상 철강업계에 보조금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에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이 직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한 품목이 수입국 산업에 피해를 초래할 때 수입국이 부과하는 세금이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한국전력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2020년에도 현대제철 도금강판 상계관세 부과 여부를 검토했다가 물리지 않았다. 그랬던 미국이 이번에 달라진 것은 국내 전기요금이 주요국들에 비해 과도하게 낮아 보조금이나 다름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의 낮은 전기요금이 통상 이슈로 비화한 것은 우려할 만한 사태다. 천문학적으로 부풀어오른 한국전력 적자 해소 말고도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 4일 “발전 원가는 대폭 오르고 누적적자가 47조원이 넘는다”며 kwh당 25.9원 인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말 국회에 kwh당 51.6원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그래놓고도 2분기까지 kwh당 21.1원 올리는 데 그쳤다. 돈이 없으니 한전은 빚을 내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발행잔액이 80조원에 달하는 한전채가 채권시장 자금을 빨아들여 기업 자금 조달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작용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다. 한전이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하지만, 전기요금 현실화 없이 한전 경영 정상화는 불가능한 지경이 됐다.

김동철 신임 한국전력 사장이 4일 세종시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내년 총선을 의식해 요금 인상을 미룰 기미다. 지난겨울 ‘난방비 폭탄’ 같은 사태가 재발할까 겁이 날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두면 한전 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국민경제에 큰 짐 덩어리가 된다. 어렵더라도 요금 인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적정 인상을 하되 취약계층에게 에너지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면 여론도 납득할 것이다. 정부·여당은 전기요금 ‘인상 로드맵’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부담스럽다고 마냥 ‘뚜껑을 덮어놓는’ 무책임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