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 소공인 추적 리포트
뭉쳐야 힘 받는 제조업, 재개발에 밀려 뿔뿔이 흩어져
쫓겨날 때마다 이전 비용 부담에 거래처도 끊겨
수십년 연마해온 기술도 ‘소멸의 길’로
서울시 도시 소상공인 지원엔 기계·정밀·공구업은 빠져
제조 생태계 붕괴 불가피…“다음 세대 전수 못해 억울”
1973년부터 서울 을지로 일대 주교동에서 기계·정밀업종에 종사해온 이강림씨가 지난달 25일 자신의 사업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씨는 이 지역이 재개발된다면 “(일에서) 손을 뗄 것”이라고 했다. 유경선 기자
서울에도 ‘장인’들이 있다. 수십년 연마한 기술로 금속을 솜씨 좋게 가공해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이들은 중구 을지로와 청계천, 영등포구 문래동 등에 모여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장인들은 그러나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의 미래를 ‘머잖은 소멸’로 보고 있다. 수십년 터전은 다른 용도로 재개발되고 설익은 이주 대책이 뒤따르면서 기술 보존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반복되는 이주의 끝은 기술 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는 최근 ‘제조서울 만들기’를 표방하며 도시형 소공인을 지원하고 제조 역량을 키우겠다고 했지만, 을지로·청계천·문래동 지역 제조상인들이 확신하는 것은 도심 제조산업의 말로다. 봉제업·주얼리 등을 제외하면 기계·정밀·공구 등과 같은 업종은 ‘제조서울’의 청사진에서 사실상 빠져 있다는 것이 현장이 가리키는 결말이다.
을지서 쫓겨간 문래…5년 안 돼 ‘재개발’
을지로·청계천 다음으로 기계·정밀 분야 도심 제조업 집적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문래동이다.
을지로에서 가장 먼저 재개발이 시작된 입정동 상인들 상당수가 2018년 말~2019년 초 문래동으로 옮겨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영등포구는 지난 6월 문래동을 재개발하기 위해 철공소 1279곳을 통째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주한 지 5년도 지나지 않아 재개발 소식을 들은 상인들은 대부분 ‘끝’을 생각하고 있다. 서울 외곽으로 옮기게 되면 지금처럼 밀집된 제조 생태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을지로·청계천이나 문래동에는 최초 재료부터 가공·조립·제품 완성까지 단계별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을지로에서는 300~500m 반경 안에서 완제품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한 상인의 말처럼 서로 다른 기능의 소공장들이 모여 하나의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다. 제조단지가 이주하면 각 기능은 분절된다. 물류비가 치솟는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한번 쫓겨왔으면 됐지, 어딜 가겠어. 이제 그만해야지.”
판금업체 대표 권모씨(69)는 이사라면 다시는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1983년부터 기름밥을 먹기 시작한 권씨는 2018년 11월 입정동에서 문래동으로 “쫓겨나온”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사다. 그는 반평생을 살았던 입정동을 떠나온 것이 못내 서운한 듯 ‘쫓겨났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서울 중구 입정동에서 2018년 떠나 영등포구 문래동으로 사업장을 옮긴 전모씨가 지난달 24일 정밀 기계로 작업하고 있다. 유경선 기자
문래동에서 권씨와 나란히 가게를 차린 정밀업체 대표 전모씨(61)도 이주에 대한 확신이 없다. 전씨는 “아예 공단을 하나 새로 조성하면 모를까, 청계천처럼 분산시켜 알아서 이주하게 만들어서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권씨도 “청계천이란 곳은 진짜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곳”이라며 “그만큼 제조기반을 가진 곳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문래동에서 정밀업체를 차린 김모씨(71)도 “재개발되면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금속을 다루는 무거운 기계들을 옮기는 데만 해도 시간과 돈이 적잖이 들기 때문이다.
입정동에서 아버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일을 하던 이상훈씨(50)는 문래동에서는 아버지와 한 지붕 아래서 일한다. 이씨는 CNC기계·레이저 가공 전문인 ‘3D SHOP’을, 아버지는 정밀업체를 책임지고 있다. 이씨는 문래동이 “청계천이랑 똑같은 절차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미 입정동에서 문래동으로 올 때 많은 분들이 그만두셨어요. 다른 곳으로 옮기면 또 태반이 그만두겠죠. 뭉쳐 있어야 힘을 발휘하는 곳인데, 점점 흩어지면서 힘이 빠지는 거죠. 다 흩어지고 나면 저도 고객에게 완제품을 만들어드리기 힘들 거예요.”
최영산 서울소공인협회장은 “문래동에 음식점·술집들이 유입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기고 이미 상권이 이빨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하다”며 “소재·가공·완제품까지 모든 단계가 촘촘해야 하는데 외부에서 들어온 자본에 땅이 야금야금 팔리다 보니까 다 내쫓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는 제조 생태계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은 “이틀이면 나오던 샘플이 지금은 일주일 걸리는 것”이라며 “이렇게 가다가는 문래동이 없어지고 소공인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선 제조업 못하게 하겠다는 것 같았다”
지난달 24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골목에 이 지역 기계금속집적지 이전 추진 관련 용역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유경선 기자
되풀이될 이주가 지겨워 애초에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간 경우도 있다. 1995년 입정동에서 일을 시작한 엘림정밀 차모씨(50)는 2018년 11월 재개발에 밀려 경기 양주에서 일을 새로 시작했다.
“문래동이나 동대문구 용두동 같은 선택지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 재개발 얘기가 걸려 있더라고요. 가만 보니까 이제 서울 시내에서는 제조업을 못하게 하겠다는 것 같아요. 문래동으로 가는 게 좋아 보였지만, 이사를 한번 하려면 정말 힘들거든요. 거래처도 3분의 1이나 따라올까 말까고. 이사비용으로 3500만원인가 받았는데, 몇t짜리 기계를 옮기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양주 공장은 입정동 공장보다 규모가 크지만 을지로만 못하다. 차씨는 “청계천 같은 곳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탱크도 을지로에서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뭐냐면, 다 각자 기술로 상부상조하면서 일하거든요. 청계천은 좁지만 용접이면 용접, 판금이면 판금, 분야별로 전문성이 있어요. 숙련공들과 일하느냐 아니냐는 천지차이예요. 외곽으로 나오면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선반·밀링·CNC 업체 대표 인태훈씨(59)는 2008년 을지로에서 송파구 가든파이브에 입주했다가 1년 만에 가게를 정리했다. 가든파이브는 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시작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이 지역 상인들의 이주 대책으로 마련한 건물이다. 당시 시장 약속과는 달리 확 뛴 임대료, 제조업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건물 설계, 인프라 부족 등으로 상인 대부분이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옮겨갔던 사람들도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인씨도 그중 하나다. 가든파이브에서 다시 입정동으로 나왔지만 거래처 대부분을 잃었고, 높은 이주비용은 빚으로 남았다. 2012년부터는 경기 화성으로 옮겨 일을 하고 있다. 화성 지역 공장들이 크고 기계도 첨단화·자동화돼 있지만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그는 말했다.
“모든 걸 자동으로 작업할 수는 없거든요. 샘플 작업이나 소량 주문은 결국 손으로 작업해서 마무리해야 돼요. 이런 기능이 같이 맞물려가야 되거든요. 그런데 정책이 그때그때 바뀌니 어디 남아 있기가 쉽나요.”
남은 을지로 상인들의 고민 ‘공공임대상가’
을지로·청계천 지역에 남은 사람들의 고민도 깊다. 입정동 상인들과 달리 을지로 내 다른 구역 제조업 상인들은 재개발 대신 서울시로부터 공공임대상가를 약속받았지만 아직까지 한 동이 지어졌을 뿐이다. 이 시설이 제조업 명맥을 지켜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임대료와 관리비는 또 다른 문제다.
한도시보리 곽한득씨(63)는 “프레스 기계가 위층으로 올라가버리면 ‘누끼’(모양) 딸 때 소리가 빵! 빵! 하고 나는데, 밑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작살난다”며 “정밀업 하는 사람들은 진동 때문에 아무리 완충을 한다고 해도 결과물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 지역에 16층 높이의 상가 건물을 계획하고 있다.
곽씨도 입정동 재개발 이후 인근 산림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곽씨는 “여기서도 쫓겨나면 이만한 장소는 다시 못 찾는다”며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흡사한 신도림(문래)으로 가든가, 아는 사람 공장이 있는 포천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산림동 인근 주교동에서 1973년 일을 시작한 이강림씨(75)는 이 지역 재개발이 시작되면 일을 접을 계획이다. “나이도 있고 손 떼야지. 수십년 경험인데 다음 세대에 못 전해주고 떠나는 게 억울하지.”
재개발 대책을 요구하며 2018년 11월 천막농성에 돌입했던 강문원 ‘청계천 생존권 사수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입정동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청계천이 다 붕괴되는 게 겁이 났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당시 홀로 88일간 천막농성을 했으며 이후 상인들이 돌아가며 412일간 농성을 더 진행했다.
“청계천은 하나의 톱니바퀴예요. 한 사람의 몸과 같은 청계천에서 업종들을 이리 빼고 저리 뺀다면 결말은 결국 죽음과 다름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