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가 시행된 지 3년이 흘렀다. 2016년 국민투표 당시 탈퇴 지지자들이 주장하던 영국 경제의 부활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 전쟁, 인플레이션 등 외부 악재로 영국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여론은 경제 위기의 원인을 브렉시트 탓으로 돌리며, 브렉시트와 후회를 뜻하는 영어 단어 ‘리그렛(regret)’을 합친 ‘브레그렛(bregret)’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다수의 언론과 연구들은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손익 판단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발생한 사회 문제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버밍엄대 연구진이 ‘사회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는 브렉시트로 인해 발생한 사회 문제를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연구는 EU 국가 출신 가족들이 경험한 브렉시트발(發) 가족 해체, 이주, 이혼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영국이 EU에 속해 있던 시절,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찾아 영국으로 이주한 많은 EU 시민들이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한 EU 국적 영국 거주자는 2016년 EU 탈퇴 국민투표 시점 300만명에 달했다. 이들 중 다수는 영국에서 가족을 구성하고 정착했다. EU가 품고 있던 ‘하나의 유럽(Pan European)’이란 비전과 권역 내 자유이동이란 권리를 갖고 있던 EU시민이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가족들은 이주냐 잔류냐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수는 영국을 떠나는 쪽을 택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주를 택한 가족들은 EU에 속해 있음으로 얻는 장점(이동의 자유, 일자리 기회, 사회안전망)뿐만 아니라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영국 내 반이민 정서, 반EU 정서에 충격을 받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부모가 같은 국적을 가진 가족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지만, 이들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다. 영국에서 태어난 이들의 자녀들은 부모 국가에서 한 번도 거주해보지 않아 문화 차이와 언어 장벽에 부딪혔다. 부모도 오랜만에 찾은 고국에서 세대 차이와 달라진 환경에의 적응 등 어려움이 있었다. 부모 각자가 다른 국적을 가진 경우 일자리 문제와 자녀의 학업 등 선택지가 많아진 탓에 거주하기에 적합한 국가를 고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가족들은 일자리와 학업 등의 이유로 가족의 일부만 먼저 타국으로 이주하고, 나머지 가족은 영국에 잔류하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부모 중 한 사람이 영국인인 경우도 살펴보았다. 이들 그룹에선 영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영국인 남편과 EU 국가 출신 아내의 의견 차이, 이주 시 자녀 교육의 가치관 차이, 브렉시트에 대한 입장 차이 등으로 이주와 이혼을 결심한 가족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브렉시트와 같은 중대한 정치적 결정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보여준다. 브렉시트에 대한 손익 분석도 유의미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브렉시트는 영국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최근 영국의 EU 재가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총선 승리 시 브렉시트 재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노동당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만큼 브렉시트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