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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의 힘·가능성 보여주다”…전시 막바지의 ‘청주공예비엔날레’

15일 폐막, 국내외 관람객 25만명 돌파 기대

주제와 전시 짜임새·관객 소통 등 호평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전시와 시너지 효과도

금속공예가 이상협은 사진 왼쪽의 31㎏ 은덩이를 오로지 손으로 두드려 오른쪽 작품 ‘무제 1’을 빚어냈다. 공예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은 막바지에 이른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금속공예가 이상협은 사진 왼쪽의 31㎏ 은덩이를 오로지 손으로 두드려 오른쪽 작품 ‘무제 1’을 빚어냈다. 공예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은 막바지에 이른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여기 아주 큼직하고 네모난 은 덩이가 있다. 특유의 빛이 나는 표면에는 ‘999.9’ ‘31.114㎏’ 등 숫자가 새겨졌다. 백분율로 99.99% 순은, 무게는 31.114㎏이란 뜻이다. 그 옆에는 아주 얇은 은판으로 꽃잎을 펼친 듯한 함지박 모양 작품(‘무제 1’)이 전시됐다. 겉은 매끈하지만 안쪽은 잔잔한 주름이 돋을새김됐다.

31㎏의 그 은 덩이는 금속공예가 이상협이 오로지 온몸으로 두드려 만든 작품이다. 기계로 보다 쉽게 작업할 수도 있지만 은 덩이를 얇은 은판으로 만들고, 은판을 조형하기까지 약 1년을 수도자의 수행처럼 두드렸다. 인공지능(AI), 디지털 시대 속 장인정신의 아날로그 작품은 관람객에게 순수 공예의 묘한 감동을 선사한다.

더불어 작품은 산업과 수공예의 경계, 인간과 사물의 관계, 공예의 역사와 현재·미래, 재료와 기법의 변화, 공예의 고유한 힘과 가치·역할 등의 생각을 촉발시킨다. 이 작품 주변에 자연 재료부터 혁신적 신재료, 전통 수공예부터 3D프린터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기법까지 다채로운 재료·기법을 활용한 세계 각국의 창의적 공예품들이 전시돼 더욱 그렇다.

국제적 공예축제인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가 45일간의 대장정 막바지에 이르면서 오는 15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11일 비엔날레조직위 관계자는 “청주문화제조창을 중심으로 청주시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를 찾은 국내외 관람객이 20만명을 돌파했다”며 “전반적 호평 속에 전시를 둘러보고 체험·교육 프로그램, 공연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즐기는 발걸음이 이어져 관람객 25만명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네치아 전통기법과 북유럽 감각을 융합한 토비어스 몰의 독특한 유리 공예 작품(왼쪽)과 버려진 플라스틱 밧줄에서 뽑아낸 실로 작업한 아리 바유아지의 직물 공예 전시 모습. 도재기 선임기자

베네치아 전통기법과 북유럽 감각을 융합한 토비어스 몰의 독특한 유리 공예 작품(왼쪽)과 버려진 플라스틱 밧줄에서 뽑아낸 실로 작업한 아리 바유아지의 직물 공예 전시 모습. 도재기 선임기자

올해 비엔날레는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는 주제 아래 세계 57개국 작가 251명(팀)의 작품 300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기획자인 강재영 예술감독은 “유구한 역사와 함께 우리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공예, 그 공예의 21세기 지도를 그려보면서 공예의 힘과 역할, 그 확장적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공예가 단지 ‘쓸모가 있으면서 좀 아름다운 물건’으로 치부되는 현실을 넘어 동시대 공예 생태계를 둘러싼 미학적 논의, 진화·발전하는 기술과 재료,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문화적 맥락, 공예의 시대적 성찰까지 조명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본전시는 ‘대지와 호흡하며 함께하는 사물들’ ‘인간-자연-사물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전자와 맥락들’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제작방식과 기술들’ ‘생태적 올바름을 위한 공예가들의 실천들’ ‘생명사랑의 그물망에서 지속되는 희망들’ 등 5개 소주제로 구성됐다.

다카하시 하루키의 도자 풀꽃·넝쿨 설치작(왼쪽)과 한지·붓·먹·벼루·각자·금속활자·배첩 등 전통 공예 장인들의 작품 섹션 전시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다카하시 하루키의 도자 풀꽃·넝쿨 설치작(왼쪽)과 한지·붓·먹·벼루·각자·금속활자·배첩 등 전통 공예 장인들의 작품 섹션 전시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관람객들은 다채로운 재료와 기법은 물론 인간의 신체와 첨단 기계·기술이 결합한 공예, 기후위기 속 생태적 올바름까지 추구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상협 작가 작품을 비롯해 도자 풀꽃·넝쿨로 아름다우면서 명상적 풍경을 연출한 다카하시 하루키, 대만 원주민들의 삶과 역사·신화를 작업한 덩웬젠, 황동을 다듬질해 옻칠로 마감한 홍시들로 서정성이 돋보이는 서도식, 사라져가는 호지공예를 환상적 색감과 세밀한 아름다움으로 되살린 신신조스 페이퍼 컬처, 북유럽 감각과 베네치아 전통기법 융합 속에 미세한 색실로 짠 듯한 유리 공예를 선보인 토비어스 몰, 첨단 기술을 적용한 마이클 이든·엠레 찬 등의 작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옻칠공예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서로재의 옻칠공예 작품(왼쪽)과 0.2㎜의 구리선을 활용한 섬유 설치로 환상적 공간을 선보인 유정혜의 설치작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옻칠공예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서로재의 옻칠공예 작품(왼쪽)과 0.2㎜의 구리선을 활용한 섬유 설치로 환상적 공간을 선보인 유정혜의 설치작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섬유설치 작가 황란의 작품(왼쪽)과 황동·옻칠로 작업한 서도식의 서정성 짙은 작품의 전시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섬유설치 작가 황란의 작품(왼쪽)과 황동·옻칠로 작업한 서도식의 서정성 짙은 작품의 전시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또 버려진 갖가지 플라스틱 밧줄·그물 등을 활용한 독특한 직물 작업을 한 아리 바유아지, 양말과 셔츠·가방 등 여러 직물과 일회용품 수선을 하는 실리아 핌 등의 작품은 공예가의 시대적 역할을 되새기게 한다. 나성숙 전 서울과기대 교수를 중심으로 옻칠공예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모인 서로재, 0.2㎜의 구리선을 활용한 섬유 설치 작업으로 환상적 공간 설치를 선보인 유정혜, 친환경 철학의 디자인으로 작품으로 유명한 유르겐 베이의 작품들, 전시장 입구 오른쪽에 자리한 섬유 설치작가 황란의 작품도 관람객의 눈길을 잡고 있다.

매듭장 이수자 김시재의 전통 매듭 현대화 작업, 한국 자수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장영란, 장석현의 현대적 감각의 전통 푸레기법 옹기 등은 전통 공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자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심체요절’(직지) 등 기록문화유산을 가능케 하는 각 분야 장인들도 한 섹션으로 소개된다. 전통 한지를 만드는 안치용, 붓 장인 유필무, 전통 먹 장인 한상묵, 벼루장 신명식, 각자장 박영덕, 금속활자장 임인호, 배첩장 홍종진 등의 작품과 관련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 본전시는 주제에 따른 작가·작품 선정, 작품 배치와 관람객 동선, 작품 설명·전시 해설, 다양한 부대행사 등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한 중진 미술평론가는 “국내 비엔날레는 수많은 작품을 억지로 맥락을 찾아 백화점식 나열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전시는 작품 선정부터 전시 기법, 관람객과의 소통 등에서 높게 평가된다”고 밝혔다.

한 원로 공예가는 “주제와 작품들이 짜임새 있게 엮어져 감상을 하면서 주제의식도 되새기고, 공예의 본질·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면서도 이야기·재미가 있다”며 “개인적으로 사라지는 전통 기법·재료에 대한 부분이 적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다른 미술평론가는 “기존 전시에선 보기 힘든 미래적·실험적·도발적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강재영 예술감독은 “‘팬데믹 이후 인류의 삶과 물질문명 성찰이라는 시대정신을 짚으면서도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전시’라는 외국 작가의 평이 좋았다”며 “그동안 단순화·협소화돼온 공예의 의미와 가치, 여러 가능성을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보여 호응이 큰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강 감독은 “전시를 위한 리서치와 작가·작품 선정이 가장 힘들었다”며 “이번 비엔날레가 인간·자연·사물의 관계를 성찰하고, 공예의 본질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면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문화제조창 한 공간에 자리한 국립현대미술관(MMCA) 청주관 전시와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도예’ 전 전경 일부. ‘이건희 컬렉션’ 중 파블로 피카소의 도예작품 107점 등을 통해 피카소의 삶과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도예’ 전 전경 일부. ‘이건희 컬렉션’ 중 파블로 피카소의 도예작품 107점 등을 통해 피카소의 삶과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청주관에서는 비엔날레 개막과 동시에 ‘피카소 도예’ ‘MMCA 청주 프로젝트 2023-안성석: 모두의 안녕을 위해’전의 막이 올랐다. ‘피카소 도예’전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파블로 피카소의 도예작품 107점과 사진 아카이브·영화 등으로 구성돼 피카소의 삶과 도예를 통한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안성석: 모두의 안녕을 위해’전은 해마다 ‘도시’와 ‘일상 공간’을 주제로 일반 전시장이 아니라 공용·야외 공간에서 펼쳐지는 청주관의 정례전이다. 올해는 안 작가가 ‘비인간과 가상 도시’를 주제로 가상 공간으로 확장된 도시와 그 속에서 인간·비인간의 공존·연대 가능성을 모색하는 인터랙션 비디오, 설치 작품 등을 선보이고 있다. ‘피카소 도예’전은 내년 1월7일, ‘안성석’전은 2월25일까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열리고 있는 ‘MMCA 청주 프로젝트 2023-안성석:모두의 안녕을 위해’ 전의 로비 전시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열리고 있는 ‘MMCA 청주 프로젝트 2023-안성석:모두의 안녕을 위해’ 전의 로비 전시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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