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시일 내에 법률이 제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논문을 끝맺었다. 2003년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시작된 ‘기업살인법 운동’의 진화를 분석한 논문이었다.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거치면서 기업에 책임을 묻는 사회적 요구가 거셌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제도’로 만들어낼 수 있는 진보적 정당 정치가 허약하다는 것이 당시 우리 연구팀의 진단이었다. 영국과 캐나다에서 노동 친화적 정당이 희생자 단체, 노동조합과 함께 입법에 나섰던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보였다. 2017년, 고 노회찬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지만, 논의도 못해보고 폐기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우리 논문이 출판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법)이 통과되었다. 개혁을 갈망하는 노동-시민 연대가 국회를 움직였고, 이는 연구자의 소심한 예측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법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에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법률이 제정되면서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은 앞다투어 안전·보건 전담 조직을 만들었고, 대형 로펌들은 고용노동부와 산하 공공기관의 공직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새로운 시장에 대비했다. 언론도 인명 사고가 터지면 중대법 적용 사항인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일단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이렇게 민감해졌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 변화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중대법만 제정되면 당장 산업재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무 미진하다. 떨어짐, 깔림, 끼임 등 소위 ‘재래형’ 사고성 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행렬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중대법은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이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제정 시 2년의 유예기간을 두도록 했다. 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작년에 일어난 산재의 74.4%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고, 산재 사망 노동자 874명의 80.8%인 707명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 이전 5년 동안, 국내 화력발전소 산재 중 97.7%, 사망 산재의 100%가 하청노동자에게 일어났다. ‘재래형’ 산재의 대부분은 노동시장 주변부, 공급사슬 말단에 있는 하청업체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집중된다. ‘위험의 외주화’로 표현되는 산재 문제의 본질은 이윤과 위험의 불평등이다.
그런데도 내년 1월 끝나는 중대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를 더 연장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중소벤처기업부와 노동부 장관도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중소기업의 준비 부족, 전문인력 확보와 비용 문제, 폐업 가능성 등을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한 이유로 들었고, 노동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저희가 지원을 많이 했지만 여전히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개정안 설명자료에는 법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범법자가 양산되고 기업이 도산할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국가경쟁력 상실”이 우려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바꿔 말하면, 중소기업 노동자가 다치고 목숨을 잃어도 사업주 책임을 면해주어야 사회적 혼란이 줄고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의 인신 공양으로 유지되는 국가경쟁력이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사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1982년 이래,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은 한 번도 ‘시기상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준비만 40년째인 완벽주의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시기상조 뒤에 사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