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욕망하다 : 부동산
투자로 움직이는 한국 부동산 시장
유명무실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폭탄 유예 막으려면 패러다임 전환해야
지난달 10일 재건축을 진행 중인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재건축조합이 용적률 상향의 전제 조건으로 약속한 공공주택 제공과 공공시설 기부가 너무 과하다며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붙인 것이다. 아파트 재건축 현장은 이처럼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욕망과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본능 사이 갈등이 충돌한다. 조태형 기자
정부와 지자체, 국회가 주도하는 규제 완화 흐름을 타고 전국에서 재개발·재건축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서울시도 재건축·재개발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게 해주는 대신 주택 공급과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강남 지역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강남 재건축의 추세는 대단지·고급화다. 이미 전국 최고 수준인 강남 아파트들이 재건축을 통해 가격이 더 상승할 공산이 크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는 “투자로 움직이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은 시장을 측정하는 척도이자 변동성을 키우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강남 부동산’이 부동산을 둘러싼 각종 문제의 진원지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왜곡된 부동산 시장을 바로잡으려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이익환수법)’ 등 현존 법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주택금융시장을 개편하고 장기적으로 인구·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주택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있는데 없는’ 이익환수법
재건축을 마치고 지난 8월 준공한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카메라 초점이 흔들려 흐릿하게 보인다. 이준헌 기자
“재건축사업으로 인한 용적률의 상향에 따른 고밀도 개발은 경관 악화와 기반시설 부족을 야기하기도 하고,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건축자재를 철거하여 다시 시공함에 따라 다량의 건축폐기물 양산과 자원 낭비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사업으로 인하여 상당한 개발이익이 발생하게 되고, 개발이익은 재건축조합 또는 조합원에게 귀속된다. 그런데 이러한 개발이익은 상당 부분 개인의 노력보다 용적률 증가 즉, 개발밀도의 상향조정을 통해 확보한 밀도차익 내지 해당 토지의 활용도 증가에 기인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12월 이익환수법 합헌 결정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재건축이 진행되는 땅은 조합원 또는 토지 등 소유자들의 것이지만, 경관이나 기반시설 등 그 사회의 공적인 요소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재건축으로 인한 이익이 땅 소유자에게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제도는 재건축사업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익을 환수함으로써 주택가격의 안정과 사회적 형평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2006년 처음 도입됐다. 재건축 종료 시점 주택가격에서 재건축 개시 시점 주택가격, 정상 주택가격 상승분, 개발비용을 뺀 금액을 초과이익으로 간주해 일정 비율만큼 추가부담금을 걷어 사회 일반의 주거 환경 개선에 사용하는 구조다.
이익환수법이 제정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추가부담금을 납부한 단지는 5곳, 25억원이 전부다.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을 이유로 2013~2017년 유예됐다가 2018년 다시 시행됐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2018년 이후 부과할 금액의 규모는 지난해 6월 기준 약 3조원에 달하지만 2018년 이후 추가부담금을 낸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특례규정으로 일부 면제했고, 제도를 느슨하게 만들자는 취지로 국회에서 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환수법 개정안 주요 내용 비교. 국토교통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정안은 크게 3가지로, 부담금을 면제받는 초과이익 기준을 현행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높이고 2000만원 단위로 10%포인트씩 올라가는 구간의 폭을 넓히자는 내용이다. 2021년 준공된 서초구의 한 재건축조합은 법 개정 때까지 부담금 부과를 연기해달라고 요구했고, 서초구청은 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여 부과금이 얼마인지조차 통보하지도 않고 있다.
제대로 시행하지도 않은 제도를 무력화하고 개정부터 하는 데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과거에도 공공성을 약화하고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며 “자동차나 냉장고는 오래되면 버리고 자기 돈으로 새로 사는데 아파트는 땅 조금 있다고 자기 돈 한 푼도 안 들이고 새 집을 얻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심상정 의원도 “재건축의 핵심은 용적률 상향인데 이는 공공의 재산”이라면서 “극심한 부동산 불평등을 해소하고 주거취약계층 지원을 위해서는 이익환수법이 제대로 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 초과이익을 돈으로 환수하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면 공공주택 등 현물 환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은 “공공기여, 기부채납이라는 게 공원을 더 크게 하거나 도로를 더 넓히는 것인데 이는 조합원들이 직접적 수혜 대상”이라며 “공공기여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앞마당을 나랏돈, 세금으로 관리해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공공기여를 없애고 공공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자는 것이다.
아예 이익환수를 할 필요도 없이 용적률을 못 올리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광수 대표는 “용적률은 공공의 재산인데 그것을 일부 계층한테 몰아주고 그 이익은 독점적으로 조합원들이 가져가니 투자자들이 몰리고 가격이 오르는 게 당연하다”며 “(재건축하는) 공공의 목적이 공급을 증가하는 것인데 지금 10억원이나 20억원짜리 아파트가 부족한 게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건축 때 굳이 (용적률 상향 같은) 인센티브를 주지 않으면 된다”며 “집이 노후돼 재건축이 필요하면 기존 용적률 그대로 자기 돈으로 새로 짓고 살 수 있게 하면 투자 수요가 지금처럼 몰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 같은 부동산”…패러다임 바꿔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본 아파트 단지. 경향신문 자료사진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변동과 기후변화 등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급격한 변화를 반영한 부동산 정책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인구 팽창 시기에 지속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본 전제로 정착된 주택 공급 및 금융 제도를 방치하는 건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2018년 방한한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파르하 특별보고관은 전세제도가 한국의 주택가격을 떠받치는 부작용이 있고,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보증금의 대폭 인상이 임차인에게 강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 등 주거 안정을 위한 금융제도 역시 왜곡돼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주택담보대출은 수십년에 달하는 만기 상환 기간까지 장기적으로 갚아나가기보다 적당한 시기에 팔아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전세대출은 전세보증금 상승을 자극해 갭투자를 활성화하는 배경이 됐다.
이런 구조는 주택가격이 상승할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하락하면 ‘하우스푸어’ ‘깡통전세’ 등 다양한 문제를 양산한다. 또한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소유자들의 이익을 더 키우지만, 하강기에는 대출을 받은 사람이나 세입자에게 리스크가 전가된다는 문제도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든 상황에서 이런 구조는 언젠가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정부는 다주택자의 기준을 바꾸는 등 어떻게든 유예하려고 하는데 부작용만 더 키우게 될 것”이라면서 “국민 전체가 인질이 되는 느낌”이라고 우려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뒤로 공사 중인 인근 단지의 타워 크레인이 보인다. 이준헌 기자
한국의 경제 성장이 정체·둔화된 상황에서 부동산으로 경기를 지탱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자칫 부동산이 불황을 장기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광수 대표는 “공장은 지으면 제품이 생산되고 부가가치가 꾸준히 나오지만 아파트는 지어질 때 수천억원이 들어가고 경기도 좋아지지만 짓고 난 뒤에는 부가가치가 없는 매우 특이한 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특성 때문에 부동산이나 건설업은 (경제의) 마약과 같은 것”이라면서 “일본의 장기 불황,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최근 중국의 경제 침체까지 모두 부동산에서 비롯된 문제들이었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와 기후 변화 시대에 맞게 주택 구조나 규모, 단지 형태 등 물리적인 요소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 자료를 보면, 2021년 건설폐기물 발생량은 8381만t이었다. 건설 폐기물의 99%는 재활용되고 남은 약 1%가 매립·소각된다. 1%라고는 하지만 매립되는 양만 49만t에 달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자료를 보면 건설 폐기물이 매립되는 전체 폐기물의 58%를 차지한다. 신축이든 재건축이든 탄소 중립에 맞도록 건설을 진행하고 가구 형태 등에 따라 구조 변형이 쉽도록 지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이다.
최은영 소장은 “부동산 시장 정상화 방안으로 보유세 증세, 공급 확대, 후분양제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이 거론되지만 안타깝게도 만병통치약은 없다”면서 “정권에 따라 이리저리 정책이 널뛰는 게 아니라 어떤 정책이든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일관되게 운영되는 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