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의사들은 무엇을 감추는가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의사들은 무엇을 감추는가

입력 2023.10.22 20:28

지역신문에 기고된 의사들의 칼럼에서는 종종 유사한 한탄이 등장한다. 진단을 ‘못 믿겠다며’ 서울의 대형병원 투어를 하느라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고통을 감수하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례 말이다. 유별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에서는, 다쳐서 지방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왜 서울로 안 갔는지를’ 주변에 자꾸만 해명해야 하는 우주의 기운이 실제로 존재한다.

이런 분위기를 탓하면, 자신은 병원 갈 때 의사가 어느 대학 나왔는지도 꼼꼼하게 확인한다는 말이 돌아오는 세상이다. EBS 프로그램 <명의>는 좋은 취지였겠지만, 명의에 출연한 의사 명단이 ‘오늘 생생정보통에 소개된 맛집’처럼 떠도는 시대의 단면일 거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병원 앞에서 의사를 새로 초빙했다는 현수막을 보았는데, 거기에 적힌 ‘○○과학고 출신’이라는 묘한 문구가 이해됐다. 의사라고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저 투박함에, 오만함보단 애잔함이 느껴졌다. 힘들게 의사가 되어서도, “능력 있으면 서울에 있었겠지”라는 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이 많아진 시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잘난 걸 하나라도 더 강조해야 하니 말이다.

지역의료를 불신하는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의사가 유명하면 사람이 몰리고, 그러면 임상사례가 풍부해지면서 시스템도 좋아진다. 그러면 그 의사에게 배우려는 전공의도 많아지고, 환자가 계속 오는 등의 선순환이 줄줄 언급된다. 이를 부정문으로 바꾸면, 지역의료의 악순환도 쉽게 설명된다. 이 고정관념이 머리에 들어오면, 같은 의료서비스일지라도 지역에서는 더 불친절하다, 더 과잉진료한다고 느낀다. 짜증의 크기만큼, “병원만큼은 서울이 최고”라며 주변에 강력히 권장한다. 이 말을 몇 번 들으면, 지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동일치료를 나중에 후회할까봐 사는 곳을 떠나는 수고를 당연하게 여긴다. 반복되면, 의사가 지역에 오지 않게 되고 사회시스템은 엉망이 된다. 모든 병원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게 아니다. 지역의료 불신의 본질을 제대로 짚자는 거다.

최소한 의사들은 당사자 문제인 만큼, 이를 사회적 해결과제로 볼 줄 알았다. 하지만 3년 전 의사 정원 확대를 둘러싼 논란에서 “지역병원에선 배울 게 없다”는 이야기는 의사들 입에서부터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의료격차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아니고서야, ‘아프다고 병원 못 간 적 있나요?’ ‘한국처럼 전문의 만나기 쉬운 곳이 또 있나요?’라는 팻말을 과감히 들 순 없었을 거다. 억울하면 서울에 살라는 수준인데, 마치 ‘의사는 다 서울에서만 나고 자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역의료 해결을 위한 의사 정원 확대가 논의되면 의료계는, 그 방법으론 어림도 없다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이유를 든다.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요구가 관철된들, 죽어도 지역은 싫다는 분위기가 의사 ‘내부적으로’ 견고하게 있는 한 문제는 그대로일 거다. 의사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등을 서울 ‘남쪽’이 아니라 ‘아래’로 보며 자란 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돼 있으니 말이다. 생애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이 거친 편견을 의사들이 감추는 한, 의사 정원 확대 논의는 곁다리만 짚게 될 거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