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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이히만들

입력 2023.10.29 20:23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아직도 그 일이 명료하게 언어화되지 않고 아프게 버석거리기만 한다. 최근에 이태원 참사를 수사한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기록을 분석한 기사를 꼼꼼히 읽어봤다. 그러다가 왜 자꾸 말더듬이처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언어가 답답하기만 한지 짚이는 데가 생겼다. 수사 기록마저 이제는 진부해질 정도로 우리는 그 사건의 진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에 참사 현장을 찾았을 때, 참사 당시의 인파를 상상해봤지만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그것마저도 힘들었다. 그 당시 누구나 감지했던 국가안전시스템의 혼란은 수사 기록에 잘 담겨 있었다. 사건의 진실을 탐색하고, 의미화하고, 다른 길을 상상해야 할 언어가 막히는 것은 차라리 당연했다. 기성 언어의 틀로 참사의 진실이 포착되고 마는데 굳이 다른 언어가 필요할 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명화 과정을 폭력의 절제나 폭력을 사회에서 제거해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규정하고는 한다. 그리고 국가에 귀속된 폭력이 어떻게 행해지는지 감시하고 제어하는 사회를 민주주의라 부른다. 예를 들어, 우리의 지난 역사처럼 국가 폭력 기구인 군대가 자의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국민을 억압하고 가두고 죽이는 국가를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비단 군대만이 아니다. 특정한 국가 폭력 기구가 특정 세력이나 인물의 안녕과 지위를 보호하는 데만 쓰일 때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국가 폭력 기구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비합리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다. 도리어 매우 합리적이고 시스템적인데, 그 합리성은 도덕성을 결여한 합리성이다.

무지와 무관심은 무사유를 낳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점령지인 소련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유대인 9만명을 학살한 책임이 있는 오토 올렌도르프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자신은 거대한 기계의 톱니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것은 훗날 예루살렘 재판에서 진술한 아이히만의 전사(前史)이기도 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반인륜적이고 반도덕적이라고 해도 양심을 시스템이나 상관에게 전가시키는 이런 수법은, 올렌도르프나 아이히만에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비겁한 수법이 아니라 ‘합리성’의 다른 면모일지 모르며 이 합리성이 현대(근대) 문명의 핵심이라는 주장에도 깊은 진실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거대 기계로서 국가 폭력 기구가 행사되는 방향과 민주주의는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즉 국가 폭력 기구가 얼마나 겸허하고 도덕적이냐 하는 점이 민주주의의 눈금이 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자 윤석열 정부는 서둘러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침묵을 강요했다. 희생자들의 개별성을 실체 없는 전체로 만들었으며 영정도 위패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하게 우리의 유구한 장례 문화에 위배되는 사건이 아니라, 희생자들을 보이지 않게 즉 비가시적 존재로 만들려는 시스템의 계획이었다. 참사나 비극이 벌어졌을 때 그 책임이 있는 주체들에게 도덕적 면죄부를 주는 전형적인 수법이기도 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는 또 다른 ‘합리적인’ 방법이다. 대통령이 끝까지 참사 현장을 외면하거나 추도의 자리가 정치 행사라고 일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리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 하기! 가리는 일은 이미 그 실체가 드러났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하기는 실체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며 무지와 무관심을 강요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지와 무관심은 무사유를 낳는다.

나치는, 처음에는 구덩이 앞에 유대인을 세워놓고 사살했지만 그 일이 병사들의 도덕적 감정을 건드릴 수 있음을 알고 점점 더 기술에 의존하게 됐다. 그래서 가스실이 등장한 것이며 가스실 운영은 스위치 작동만으로도 충분했다. 가스실로 유대인을 몰아넣은 병사들도 유대인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볼 필요가 사라졌다. 실험 결과가 제공하는 시간 뒤에 가스실 문을 열면 죽음의 ‘과정’이 생략된 주검들이 쏟아졌다. 나치는 가스실을 목욕탕이라 불렀는데 언어의 조작이 함께했던 것이다.

도덕적 면죄부 주는 건 나치 닮아

이태원 참사에 책임 있는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을 나치라 생각하거나 나치가 한 행위와 무게가 같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참사의 책임을 조직이나 상관, 또는 하위직에게 (합리적으로) 떠넘기고 자신에게는 도덕적 면죄부를 주는 행태는 올렌도르프나 아이히만과 다르다고 볼 수 없다. 아렌트는 이런 행동 방식을 ‘진부한 악’, 즉 무사유라고 불렀다.

이태원 참사의 영령들을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자주 읊조렸던 다음 시구가 떠오른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질 나뭇잎처럼 같은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제망매가)

황규관 시인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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