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요구 활동 못지않게
무차별적 가해진 ‘혐오’와의 싸움도 진행형
“2차 가해 막아달라” 호소에도 변한 건 없어
‘희생자들 모욕’ 고소에 1건만 벌금형 확정
‘희생자 시민분향소’도 혐오·폭언 시달려
“누군가 또 겪으면 비극…할 말 안 멈출 것”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지난 29일 참사가 발생했던 서울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에 마련된 10.29기억과 안전의길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해 11월22일 서울 최고 기온은 16도에 이르렀다. 절기상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이었지만, 10년 만에 가장 따뜻한 11월이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유족 34명은 이날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회견장을 가득 채웠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활동이 전부가 아니다. 언론 앞에 선 그날,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무차별적으로 가해진 ‘혐오’와의 싸움도 진행형이다. 첫 기자회견에서 “2차 가해를 막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참사 1주기가 지나도록 변한 건 없다.
참사 유가족 김정현씨(28·가명)는 “두고 볼 수 없어” 2차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소송에 나선 뒤엔 앙심을 품은 가해자들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휩싸일 때도 있다. 하지만 정현씨는 또 한 번 용기를 내 지난 20일 인터뷰에 응했다. 그와 함께 지난 1년간 희생자와 유족에게 가해진 ‘혐오 참사’를 되짚어봤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악플러’를 고소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혐오 차별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사자명예훼손. 이태원 참사 전까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용어였다. 정현씨는 온라인상에서 희생자들을 모욕한 이들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증거자료는 직접 수집했다. “2차 가해 글이 너무 많아서 심한 것들만 먼저 추렸다”고 했다. 일베(일간베스트)와 디시인사이드 등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주 대상이었다. 8건가량의 가해자가 특정돼 재판에 넘겨졌다. 현재까지 판결이 확정돼 종결된 사건은 벌금 200만원이 선고된 1건이다.
가해자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1심 선고 이후 “형이 너무 세다”며 항소하기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하기도 했다. ‘사과할 테니 합의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도 있었다. 정현씨는 “저를 모욕한 사람이라면 사과를 받고 합의할 수 있지만, 고인들을 모욕한 것이라 저에겐 자격이 없다”며 거절했다.
최고 벌금인 500만원이 선고됐으나, 검찰이 징역형을 요구하며 항소한 경우도 있었다. 사자명예훼손의 법정형은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정현씨는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욕보였다. ‘문란한 행동을 하러 이태원에 갔다’는 식으로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며 “판결문에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맞지만, 초범인 점을 고려했다’고 쓰였다”고 했다. 이 사건은 지난 8월 1심 선고가 났다.
정현씨는 직접 소송에 나선 이유에 대해 “처음엔 화가 나서 고소를 했는데, 점차 판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했다. 그는 “사자명예훼손과 모욕죄는 친고죄에 해당돼 고인의 가족만 할 수 있었다. 허위의 사실을 고의성을 갖고 유포한 걸 입증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며 “죽은 사람도 이름이 남게 되고, 인권을 보호해줘야 한다 생각하는데 법의 문턱이 높았다”고 했다.
‘혐오 폭력’에 방치된 유족들…극우단체 소송도

이태원 참사 49재인 지난해 12월16일 이태원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 앞에 주차된 신자유연대의 차량에 ‘이태원 참사 추모제 정치 선동꾼들 물러나라’고 적힌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조문객들을 맞는 유가족들은 매일 이 문구를 마주해야 했다. 박하얀 기자
참사 이후 정현씨는 휴직을 하고 가족의 곁을 지켰다. ‘지킴이’ 당번이 돌아온 날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에 가서 종일 자리를 지켰다. 2차 가해는 온라인상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분향소를 찾는 이들은 추모객뿐만이 아니었다.
특히 극우단체 신자유연대의 비방과 조롱은 끈질겼다. 참사 직후 꾸려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앞 이태원 광장 시민분향소 바로 옆에서 이들은 차량 앰프로 “선동하지 마라” “뭘 더 바라냐” 등의 폭언을 쏟아냈다. 참배객을 모욕했고, 분향소 인근에 참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혐오 발언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유가족협의회는 이 단체를 상대로 분향소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임정엽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2월 이를 기각했다. 분향소 100m 이내에서 확성기로 방송을 하거나 고성을 지르는 행위, 혐오 발언이 적힌 현수막·팻말·벽보 등을 게시하는 행위도 막아달라 요청했으나 역시 기각됐다.
유족이 오히려 신자유연대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신자유연대 대표 김상진씨는 지난해 12월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 등 유가족 2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언론사 인터뷰와 간담회 등에서 자신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였다. 4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지난 9월 이 소송을 조정에 회부했고, 이후 진전은 없는 상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7월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청구를 기각했다. 기자회견을 하는 유가족들을 향해 “이태원은 북한 소행이다.” “탄핵 기각은 국민의 승리” 등 보수단체 회원들의 막말이 쏟아졌다. 현장은 곧 아수라장이 됐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 차량에선 가수 패티킴의 ‘이렇게 좋은 날’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정치권도 사법부도 ‘공범’…혐오를 키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일 국무위원들과 함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을 방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악플러’와 극우단체 인사들은 별세계에서 온 이들이 아니다. ‘책임 회피’와 ‘관종 정치’가 뒤섞인 공인들의 막말이 1년 내내 유족을 괴롭혔고, 이들이 일군 토양에서 ‘전문 혐오꾼’이 자랐다.
김미나 국민의힘 창원시의원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려먹기 장인들.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제2의 세월호냐. 나라 구하다 죽었냐”와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김 의원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으나, 1심 재판부는 지난 9월19일 징역 3개월의 선고 유예를 내렸다. 선고유예는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창원지법 마산지원(형사3단독 손주완 판사)은 “피해자들의 수가 200명이 넘는 많은 수이며, 그 내용에 있어 가족의 죽음을 맞은 유족들에게 모멸감을 줄 과격한 언사”라면서도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태도를 보이는 점, 그동안 사회활동을 열심히 해온 사람으로서 다시는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사법부가 면죄부를 줬다”며 반발했고,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재판을 지켜본 정현씨는 “공인이라는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더 중한 처벌을 해야 하는데, 제가 고소한 가해자들보다 약한 처벌을 받았다. 정치인들이 참사 희생자에게 막말해도 되는 분위기를 부추기는 듯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유체이탈 화법도 끊이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15일 정부청사 기자간담회에서 참사 트라우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청소년에게 “좀 더 굳건하고, 치료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말해 질타를 받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댓글창 폐쇄를 요청하기 위해 기자에게 직접 보낸 e메일(왼쪽)과 시민들이 2차 가해 글과 댓글을 유족 측에 제보한 e메일 목록. 김정현씨 제공
참사 초기 정현씨를 비롯해 희생자의 형제·자매들은 직접 언론 대응에 나섰다. 정현씨는 “개인신상이 노출된 기사 삭제를 요청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머뭇거리는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며 “댓글이 엄청나게 달린 머리기사였다. ‘유족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놀러 가서 죽었는데, 추모를 왜 하냐.’ 2차 가해 댓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내용이다. 정현씨는 “국가인권위원이라는 사람도 ‘국가가 주관한 축제도 아니고, 피해자들이 놀기 위해 모였다가 참사가 난 것’이라고 발언했다.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도 공개적으로 그리 말하는데, 일반인은 더 쉽게 말하지 않겠냐”라고 했다.
“청년들이 놀러 가서 죽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요?” 정현씨는 되물었다. 그는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과 비교하는 댓글도 정말 많다”며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은) 당연히 존경받아야 할 분들이다. 하지만 이분들과 비교돼야 할 건 참사 희생자가 아니라, 충분히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음에도 참사에서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자들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난 2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했다가 대회 중간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그는 유족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 2차 가해자가 국가라고 했다. 그는 “2차 가해를 주도하고 방치하고. 진상규명을 아무리 외쳐도 시종일관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유족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느낌”이라며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를 점점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방향을 잡았구나.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정현씨는 그럼에도 할 말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저희를 비난하는 사람일지라도 같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계속해서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족이, 친구가, 지인이 놀러 가서 죽는다면, 이런 아픔을 누군가 또다시 겪어야 한다면, 그건 너무 비극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