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 8월1일,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러 나가는 첫 출근길에 “과거 공산당의 신문·방송을 언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확연해진 예상이었다. 정권에 불리한, 비판적 보도를 하는 언론을 가려내고 몰아붙이겠다는 속내였다. 여차하면 ‘공산당 기관지’ 같은 낙인까지 찍겠다고 하니 시대착오적인 편협한 언론관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은 장악될 수 없고, 장악해서도 안 된다”는 첨언은 수사에 불과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예상대로, 언론장악 행보를 거침없이 이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익히 보였던 것처럼.
이동관 위원장은 8월 말 취임 후 바삐 움직였다.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 완결이 급선무였다. KBS 이사회의 절차상 하자를 묵과한 채 속전속결로 여권 보궐 이사를 채워 ‘낙하산 사장’ 후보 추천을 밀어붙였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교체 과정에선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방통위는 권태선 이사장 해임에 대한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에 반발해 항고했는데 최근 2심에서도 기각됐다. 해임 조치가 무리였다고 법원이 일관되게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재항고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속도전을 넘어선 폭주다.
법 위로, 선 넘는 행태는 이뿐 아니다. 이동관 위원장은 지난 6일 국회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방송3법) 본회의 상정에 대해 “상당히 심각한 절차적 정당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방송3법 직회부가 유효하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시한 발언이다. 법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가. 국회 답변에서 여당을 “저희 지도부”라고 지칭한 것도 정치적 독립성·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방통위원장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다.
그는 이른바 ‘가짜뉴스 근절’에도 온 힘을 쏟고 있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꺼내 ‘가짜뉴스’를 내는 언론사를 폐간까지 시킬 수 있다고 으름장 놓더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전담센터를 열고 가짜뉴스 여부를 판별해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사실과 진실을 덮고 거짓·왜곡된 정보를 퍼뜨려 건전한 공론 형성을 저해하는 가짜뉴스는 단속·규제하는 게 맞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다. 이동관표 가짜뉴스 대책은 정부가 알아서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라 온당치 않다. 불편한 정보라면 너도나도 말하는 가짜뉴스의 개념이 광범위하고 모호한데, 그걸 국가권력이 직접 판단한다는 건 상식 밖이다. 초법적인 언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뿐이다.
당장 방송통신심의위는 인터넷 언론사 기사도 정보통신 심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전까지 인터넷상 ‘유해 정보’로 국한하던 범위를 인터넷 언론 보도까지 넓힌 것이다. 현행법상 근거도 없이 언론 보도 심의를 강행하는 것이라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가권력이 언론을 직접 통제하는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일이다.
이런 기조는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에만 미국 의회에서, 4·19 63주년 기념식에서,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서, 국무회의에서 때마다 “가짜뉴스”를 계속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가짜뉴스가 자유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지난주 화상으로 참석한 영국 ‘AI 안전성 정상회의’에서도 “가짜뉴스가 자유를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렇게 연일 가짜뉴스 ‘척결’을 외치고 있으니 정부 유관 부처들이 가짜뉴스 몰아내기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가짜뉴스 자체보다 가짜뉴스를 낸다고 정부가 자의로 판단한 언론을 장악하고 억압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어 문제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아서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회장은 “‘가짜뉴스’나 ‘국민의 적’이라는 말은 나치 독일 등 인류 역사의 끔찍한 순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독재자들이 독립적인 언론을 제거하고 나라를 통제하는 데 쓰였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를 빌미로 저널리즘을 악마화하는 것은 반애국적인 일이라고도 했다. 새겨들을 말이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2세는 언덕길 2㎞에 통나무를 깔아 바닷길 진입이 막힌 군함 70척을 끌고 넘어가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펼쳐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다. 배가 산으로 가서 성공한 유일한 사례다. 그때, 570년 전에는 역발상의 지혜라도 있었다. 하지만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윤석열 정부의 가짜뉴스 정책은 무턱대고 산으로만 가고 있다. 역행이고, 퇴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