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취급 규모 올 6월 기준 162조 달해…비중도 15%까지 상승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만기일시상환 비중이 높은 전세자금대출 관리에 신경 쓰지 않으면 앞으로 가계부채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9일 공개한 ‘국내 가계부채 현황 및 위험요인’ 보고서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절대 규모 자체가 계속 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부동산 관련 대출이 많아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86조6000억원인데, 이 가운데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839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가계가 대출을 받는 주된 목적이 대부분 부동산과 관련돼 있다는 의미다. 실제 보고서가 가계금융복지조사 등을 토대로 추산한 결과 신용대출이나 담보대출을 보유한 가구 중 부동산 구입이나 보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은 가구 비중은 2012년 55%에서 2022년 67%까지 높아졌다.
또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기를 거치면서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투자의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2022년 기준 부동산 투자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가구 비율은 44세 이하 가구에서 70%를 웃돌고, 45~54세와 55~64세 가구도 각각 70%와 60%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가계 전반의 부동산 투자의향 강화는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가계부채 증가세를 확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주담대 중에서도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데다, 만기일시상환 비중이 높아 잠재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 은행이 취급한 가계대출 중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2018년 72조원 규모에서 지난 6월 말 162조원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은행 가계대출 가운데 전세자금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6년 말 5% 수준에서 올 상반기 15%까지 높아져 가계대출의 가파른 증가세에 전세자금대출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출을 받은 주된 목적이 ‘보증금 마련’에 해당하는 가구는 전체 대출 가운데 만기일시상환 비중이 73%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부동산 구입(27%), 사업자금(46%) 등의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가구에 비해 훨씬 취약한 구조에 해당한다. 보고서는 “전세자금대출은 만기일시상환 비중이 높아 가계대출의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향후 금리 인하 사이클로 전환되는 경우 전세자금대출이 빠르게 늘어나며 가계대출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일관된 부동산 정책을 통해 가격 상승 기대를 억누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