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의 계절

신예슬 음악평론가

이번 가을, 몇몇 페스티벌 현장에 방문했다. 시작은 10월7일 토요일에 오랜만에 찾아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었다. 이전에는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의 공연 시간에 맞춰 오갔지만 올해는 낮부터 쭉 축제 현장에 머물렀고, 공연 안팎에 소소하고 재미난 즐길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하나는 ‘자라 체조’였다. 무대 전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관객들의 스트레칭을 독려하는 이 체조는 매년 다른 음악, 다른 동작으로 꾸려져 이제는 자라섬의 중요한 전통처럼 자리잡았다고 했다. 무대 뒤편에 넓게 포진한 부스들도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부스에는 재즈 중심의 음반 가게부터 지역의 유명 맛집들의 출장부스, 가벼운 마실거리 등이 가득했다. 물론 기억에 가장 또렷이 남은 것은 조지, 티그랑 하마시안을 비롯한 무대 위 음악가들이었지만, 이렇게 느긋하고 풍요로운 분위기라면 그저 축제를 즐기러 언제고 찾아올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축제의 한 모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지역의 지형을 바꾸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달에는 서울 곳곳에서 옵신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학생 시절에는 ‘페스티벌 봄’이라는 축제를 무작정 쫓아다니며 이른바 ‘다원예술’ 분야의 작업들을 하나둘 배워나갔었는데, 그때 공연장에서 처음 만났던 창작자들의 이름을 지금은 옵신 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있다. 10월 마지막 날 시작되어 거의 한 달간 이어지는 이 느린 축제는 공연들을 긴 호흡으로 구성해 두었고, 덕분에 일상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지 않고도 대부분의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마텐 스팽베르크의 ‘감정으로부터 힘을 얻다’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병의 방’을 관람했고, 이어서 관람할 공연도 아직 한참 남아 있다. 옵신 페스티벌에서 나는 환영처럼 출몰했다가 사라지는 감각들, 몸의 경험을 잊지 않으려는 창작자들, 체화된 것을 곰곰이 되돌아보려는 태도를 만난다. 이곳은 내게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쫓는 사람들, 말 없이 서로의 질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처럼 다가오고, 그렇기 때문에 이 페스티벌의 존재가 조금은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지난 주말에는 포항음악제에 다녀왔다. 봄에 통영국제음악제가 있고 여름에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있다면 가을엔 포항음악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행사는 마찬가지로 서양의 음악 전통을 중심으로 한 실내악과 관현악 레퍼토리를 살펴보는 축제였다. 첼리스트 박유신의 기획하에 만들어진 이 음악제는 예술감독의 특성을 고스란히 닮은 듯, 현악 레퍼토리에 강점이 있었고, 또 한자리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연주자들이 함께 만드는 몰입도 높은 연주를 선보였다. 음악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밀도 높은 음악적 경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공연들을 지켜보며 처음엔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기량에 주목했지만, 포항음악제를 전체적으로 둘러보게 되면서는 포항음악제를 만들어가는 힘, 포항이라는 지역의 이야기, 그리고 이곳에서 이 페스티벌을 통해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등, 여러 즐거운 궁금증이 남았다.

현장을 자주 오갈수록, 어떤 아티스트의 팬이 되기도 하지만 ‘축제의 팬’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시작은 축제에 참여하는 한 아티스트인 경우가 많지만 점점 축제가 다루는 장르 전반, 지향점까지 애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스무 살이 된 축제부터 이제 막 첫발을 내딘 축제까지, 여러 축제들이 이 계절을 채우고 있다. 축제의 서로 다른 모양새만큼 그 축제에 기대하는 것, 그 축제를 찾아가는 이유 또한 제각각이지만 근본적으로 축제 현장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동일한데, 그건 아마도 그 지난한 과정을 감수하고서라도 함께 모이는 장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무언가에 대한 애정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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