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받아서 회원가입까지 했습니다. 그냥 하루아침에 사장이 ‘폐지해’ (하면) 그냥 바로 폐지하는 건가요? 모든 일에는 절차라는 게 있는 것입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삶의) 낙이 없어졌네요.”
박민 KBS 사장 취임 첫날인 지난 13일 KBS가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더 라이브> 편성 삭제를 공지하자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소감 게시판에는 이런 글을 포함해 시청자 의견이 수십개 올라왔다. <더 라이브> 운영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게시판에 올라온 결방 공지에는 “언론탄압이 더 라이브까지 덮쳤다” “너무 즐겨보던 프로그램인데 다시 볼 수 있길 희망한다” “프로그램을 제발 지켜달라” 등 댓글이 14일까지 560여개 달렸다.
<더 라이브> 애청자라고 밝힌 김모씨(56)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딸과 함께 보던 프로그램이고, 여야 정치인이 균형 있게 출연해서 불편함 없이 잘 봤다”며 “이런 프로그램이 사장 말 한마디에 사라진다는 건 시청자들의 볼 권리, 채널 선택권이 침해되는 것”이라고 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A씨는 “잘 준비를 마치고 이불 속에서 <더 라이브> 보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며 “아무런 예고도, 설명도 없이 프로그램을 폐지한다는 게 시청자를 무시하는 행위로 느껴진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건 <더 라이브> 시청자만이 아니다. 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라디오센터에서는 같은 날 센터장이 <주진우 라이브> 담당 PD에게 전화해 진행자 주진우씨의 하차를 통보했다. 주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간부에게) 청취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이 간부는 방송 날 해고 통보는 비상식적인 일이고,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안 된다고 했다”며 “(박민) 사장이 워낙 강경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고 적었다. 이 글에는 “응원한다” 등 댓글이 400여개 달렸다.
1TV 간판뉴스인 <뉴스9>의 이소정 기자가 4년 진행 끝에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물러난 것을 두고도 여성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강한 불만이 나왔다. 2019년 11월25일부터 <뉴스9>을 진행한 이 기자는 ‘지상파 최초의 간판뉴스 여성 메인 앵커’라는 타이틀이 붙은 터였다.
직장인 최모씨(29)는 “어릴 때부터 나이 든 남자 진행자, 젊고 예쁜 여자 진행자 이렇게 굳어진 방송 뉴스만 봐왔다”며 “그러다 공영방송인 KBS가 여성을 메인 앵커로 발탁했다고 해서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상징성이 있는 인물인데 아쉽다”고 했다. 주부 한모씨(41)는 “어느 날 보니 KBS 9시 뉴스를 여자가 진행하고 있더라. ‘시대가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는데”라며 “한 시절이 끝난 기분”이라고 했다.
한상희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방송사가 방송을 편성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라며 “아무런 예고 없이 삭제되는 것은 방송을 보는 시청자를 완전히 배제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이건 나쁜 방송이니까 보지마’라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판단하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라며 “사장 취임과 동시에 편성 변경이나 진행자 교체가 이뤄진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노조와의 단체 협약에 따라 프로그램 또는 제작진 진행자 교체의 경우에는 사전에 협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번 상황은 내부에 있는 제도나 규약을 무시하고 자율적 편성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특히 박민 KBS 사장은 각종 의혹이나 자질 시비, 도덕성 문제 등 여러 가지가 논란이 됐다. 그런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일방적으로 주요 프로그램 진행자를 교체하고 시사 프로그램 편성을 없애는 것은 아주 폭력적인 조치”라고 했다.
▼ 이유진 기자 yjleee@khan.kr 박채연 기자 applaud@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