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각종 폭언에 시달려”…장시간 노동 문제도 지적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공연 중인 연극 <파가드>의 포스터. 극단 홈페이지 캡처
여성들로만 이뤄진 일본의 뮤지컬 극단인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최근 소속 배우의 사망 사건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를 연상케 하는 집단 괴롭힘이 선후배 사이에 이뤄져온 것이 폭로되면서 ‘110년 전통’이란 이름 아래 묻혀 있던 악·폐습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이 가극단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달 30일 극단 배우인 아리아 기이(25)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단이 됐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아리아는 사망 전날 연극 <파가드(PAGAD)>의 첫 무대에 올랐으며, 리허설 과정에서 선배들에게 각종 폭언을 들었다. 그는 사망 전 어머니에게 “정신적으로 괴롭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극단 내에서 겪어온 각종 문제들을 폭로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아리아는 입단 7년째가 된 올해 신인 배우들의 공연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게 되며 일부 선배들로부터 잦은 압박을 받았다.
선배들은 그에게 ‘후배들이 실패하면 모두 네 탓’ ‘마인드가 없는 것인가’ 등의 폭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슈칸분슌’은 일부 선배들이 그의 이마에 고데기를 갖다 대려 하며 괴롭혔다고도 보도했다.
고인은 공연 준비로 지난 8월 중순부터 1개월 반 동안 하루 수면 시간이 3시간가량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9월의 경우 업무 시간이 하루 약 16시간에 달했다고 유족 측은 설명했다.
논란이 되자 극단 측은 지난달 조사팀을 꾸렸으며, 지난 14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극단 측은 고인이 한 달에 118시간 이상의 시간외 노동에 시달렸으며, 선배들의 압박까지 받아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선배들의 압박이 사회통념에 비춰 허용되는 범위는 넘지 않았으며, 집단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는 행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유족 측은 같은 날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극단 측의 조사 결과가 부당하다며 재검증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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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에선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엄격한 상하관계를 재조명했다. 선후배 간의 엄격한 관계를 전통으로 여겼으나, 도를 넘은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극단 소속 배우였던 히가시 고유키는 “선배들에게서 무언가를 지적받으면 반론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런 관습은 오랜 세월 전통이란 이름으로 미담으로 회자됐다”며 “그 이면에 있는 폭력이나 괴롭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