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서민 종노릇” 발언 후
야의 세금 아닌 부담금 형식 법안
“환수 기준 불분명” 실효성 의문에
여당 등 반대 측 “기업 약화” 반발
고금리에 힘입어 막대한 이자 수익을 거둔 은행권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은행의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횡재세’ 도입 논의가 물살을 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은행 횡재세’ 법안을 사실상 당론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환수 수준과 방식을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설계해 법안이 실효성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영국과 유럽연합(EU) 5개 국가에서는 이미 횡재세를 도입했다. 횡재세는 정부 정책이나 대외 환경 변화로 기업이 얻은 막대한 초과이익에 대해 추가적으로 징수하는 법인세나 기여금, 분담금을 뜻한다. 독점적 지위에 있는 기업이 고금리·고유가 등 외부 유인 덕에 얻은 초과이윤에 대해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횡재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세금은 아니다. 이미 등장한 지 100년도 더 된 세금이다. 미국의 제조업 대기업들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막대한 수익을 거두자, 미국 정부는 전쟁으로 인해 이들 기업이 막대한 초과이익을 거뒀다고 보고 초과이윤에 따른 세금을 걷은 바 있다.
오일쇼크 이후인 1980~1988년에는 원유횡재세(Crude Oil Windfall Tax)가 부과됐고, 영국도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전비 조달을 위해 횡재세를 도입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민주당을 중심으로 횡재세를 추진했지만 이중과세 논란과 정부·여당의 반대에 막혀 흐지부지됐다.
잠잠하던 황재세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인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지난달 30일 윤 대통령이 “서민들이 은행 종노릇 하는 것 같다”며 은행의 ‘이자 장사’를 비판하며 금융권 압박에 나섰고, 민주당이 한발 더 나아가 민생 의제로 횡재세 도입을 내걸면서 판을 키웠다. 지난 14일에는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이 금융소비자보호법과 부담금관리기본법 등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금융회사가 직전 5년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넘기는 ‘초과이익’을 낼 경우 해당 초과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생 금융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걷힌 기여금은 장애인·청년·고령자 등 금융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 금융소비자의 금융 부담을 줄이는 데 쓴다.
민주당 법안은 횡재세를 법인세 부과가 아닌 ‘부담금’ 형식을 취했지만 반발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당장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를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 법안”으로 규정하고 “횡재세법은 여러 가지 법적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법인세와의 이중과세 논란, 주주 이익 침해에 따른 위헌소송 가능성 문제 등이 반대의 골자다.
당사자인 은행권이 반발하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은행들의 경우 횡재세로 충당금 재원이 줄어들고, 은행이 횡재세 부담을 대출자에게 전가하면서 금리가 올라 되레 서민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은행을 시작으로 반도체나 다른 산업군으로 횡재세가 확대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기업이 비용 절감이나 혁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커져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중과세 논란도 여전하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부담금 방식이라지만 법인세를 내고 또 내야 하는 사실상 이중, 삼중 과세에 해당한다”며 “세목에 없는 초과이윤세”라고 했다.
횡재세를 입법하려면 조금 더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법안은 초과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기여금(부담금)을 징수하도록 명시했을 뿐 최소 부담률은 정하지 않았다. ‘금리 1%포인트 이상 상승 시 20% 넘는 초과이익의 10%’ 등 부담금 수준을 고정한 기존 횡재세 법안들과 다르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민주당의 횡재세 법안은 실효성이 없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도 하지 않을 만한 수준”이라며 “이대로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당초 횡재세 취지를 살리기 어려워 상징 입법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