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번역’ 인식한다면

심완선 SF평론가

번역을 창작이라고도 말하는 이유는 번역 전후의 언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발어는 도착어와 다르다. 다르기에 번역자의 적극적인 주선이 필요하다. 번역자가 원문을 최대한 그대로 전달하려 하든, 새로운 표상을 만들어 감각을 살리려 하든, 번역 과정에는 도착어를 고심해서 출발어와 짝짓는 일이 일어난다. 번역자는 불일치하는 두 세계의 말을 동치시킨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최한 제4차 비평포럼 ‘넘어가는 이야기들’에서 이희우 평론가는 재현과 번역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둘은 한쪽의 말을 다른 말과 동치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재현은 두 개의 말이 같다고 하는 방법이라면(물은 H2O다), 번역은 불일치를 의식하는 방법이다(영어의 water는 한국어에선 물로 번역되곤 한다). 이는 번역 과정에 수반되는 실천적, 매개적 작용을 의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재현이 아니라 번역의 틀로 본다면 기존에 생략되었던 요소들을 재생할 수 있다(물은 어쩌다 H2O로 표시되었을까?). 나아가 재현에 포섭되지 않았던 영역과 새로이 관계 맺을 수 있다(모든 물이 H2O일까?).

그러니까 번역은 불일치로 인해 생겨나는 구체적 문제들을 고려한다. 정보라의 단편소설 <통역>의 화자는 드물게도 외계인의 말을 통역한다. 그는 어느 지방의 공장에서 일하던 외계인 노동자의 말을 근로감독관에게 통역한다. 그들 외계인은 시간이란 관념이 없으므로 ‘멀리서’라는 말은 한국어로 ‘오래전에’라고 옮겨야 한다. ‘귀신이 흥미롭다’는 말은 자칫 비인간적으로 들릴지도 모르므로 옮기기가 조심스럽다.

화자는 외계인 노동자의 의사를 온전히 통역하고 싶어 한다. 그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전달하고자 한다. 외계인은 상무의 지시를 곧이곧대로 이해했을 뿐이다. 상무는 공장에 귀신 소동이 일어나 가동이 중지되는 일을 싫어했다. 그러니 사장의 귀신이 나타났을 때 바로 소멸시킨 것은 외계인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노동행위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사장 아들인 상무가 자기 아버지 귀신은 특별히 여기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귀신을 소멸시켰다는 이유로 상무가 외계인을 쫓아낸 것이 오히려 부당노동행위다. 나아가 외계인이 지구를 집어삼키리라는 상무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그들 외계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지구는 그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잘 모른다는 이유로 적대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오류다.

<통역>은 외계인을 어떻게 번역할지 고심하는 동안, 인간의 사고방식이 유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시간, 미래, 죽음처럼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졌던 요소들이 외계인에게는 없다. 우리의 언어는 여러 삶의 방식 중에서 인간 하나를 담을 뿐이다. 우리는 화자의 주선을 통해 우리와 불일치하는 다른 세계와 어렵게 연결된다. 길고 골치 아픈, 그러나 생생하고 실천적인 번역의 관점으로 일상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나의 인식이 번역문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일치성(오류 없음)은 착각이고, 나의 방식에 어떤 자명한 우위는 없다. 이것이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번역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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